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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금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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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98호 고분에서 새로 나온 금관은 좀 특이하다. 대륜의 직경이 26㎝나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 금관 중에서 제일 컸던 천마총 금관도 그 지름은 23㎝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98호 고분의 피장자는 여왕이 아니면, 왕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여성은 머리숱이 많기 때문에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론은 당시 여왕이나 왕비가 금관을 썼다는 확증이 없다는 것이다. 또 설사 금관을 썼다 하더라도 여성의 머리숱이 반드시 더 많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도 생각할 수 있다. 당시의 남성이 단발이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관이란 도시 일상용이 아니라 의식용이었다. 한결 위엄있게 보이려고 실제 머리 치수 보다 크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짙다. 의심을 하자면 금관은 꼭 왕만이 썼느냐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렇다.
서양에서 흔히 왕의 상징으로서의 왕관이 생겨나기는 중세 이후로 보고 있다. 옛「로마」의 황제들도 관을 자주 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때론 월계관을 쓰기도 했고, 때로는 또「페르샤」왕들이 쓰던 비단이나 아마포로 만든「밴드」(띠)를 애용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 한 예이다. 이「밴드」는 뒤에「유스티니아누스」1세 때에야 황금「밴드」로 바뀌었다. 이것이 오늘의 왕관으로 발달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에 남아 있는 왕관 중에서 가장 신성하고 역사적인 것으로는「밀라노」근처의 한 성당에 있는「롱바르디아」「철의 왕관」을 친다. 6세기 때의 것이라는 이 왕관은「그리스도」를 처형했던 십자가의 못을 써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붙어 있다.
가장 호화로운 것으로는 영국「엘리자베드」여왕의 왕관을 꼽는다. 「빅토리아」여왕의 대관식 때 만들어진 이 왕관은 백금의 틀 속에 2천 수백개의「다이어먼드」, 3백개의 진주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다이어」들 속에는 309「캐럿」짜리『「아프리카」의 별』이 박혀 있고, 또 작은 계란만큼이나 큰「흑왕자」라는 별명의「루비」도 박혀 있다.
서양에는 유서 깊은 왕관들이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역사가 길고 왕가들도 많았던 때문이지만 꼭 왕들만이 왕관을 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면 황족은 물론, 귀족들도 관을 썼었다. 이것을 왕관과는 구별해서 보관(Coronet)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장식만이 약간 검소하고 대륜 위에 벙거지가 따로 붙어 있지 않을 뿐, 모양은 왕관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서양의 왕관에 비겨 신라 금관들도 그 정교한 솜씨에 있어서나 호화로움에 있어서나 결코 뒤지지 않는 것만은 틀림없다.
새삼 신라인들의 슬기며 심미안을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우리는 98호 고분에서 나온 금관의 임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낼 만한 슬기도 아직은 못 가진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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