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이규혁 "아침에 거울 보니 식스팩 온데 간데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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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밴쿠버 올림픽 직후 잡지 모델로 나선 모습. [사진 맨즈헬스]

“아, 되게 홀가분했다.”

 현역 마지막 레이스를 끝낸 뒤 이규혁(36·서울시청)의 첫마디였다. 이규혁은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링크 위를 질주했다. 소치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환했다. 이규혁은 자신을 응원한 팬과 대표팀 관계자, 취재진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규혁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200m를 16초25에 통과해 중간 순위 1위에 올랐다. 온몸을 쥐어짜며 사력을 다해 올림픽 메달을 걸고 싶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기록은 1분10초04. 그때까지 뛴 12명 중 4위였다. 최종 성적은 1000m 21위, 500m 18위.

 이규혁은 경기 후 “후회 없는 레이스였다”고 했다. 그는 “초반부터 달렸다. 첫 200m 기록이 괜찮아서 ‘나한테 올림픽 메달이 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살짝 중심을 잃고 나서 다리에 힘이 빠지더라. 전성기였으면 좀 더 버텨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레이스를 마친 뒤 이규혁은 케빈 크로켓(40) 대표팀 코치와 한참 동안 끌어안았다. 둘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 500m에서 한국과 캐나다를 대표해 빙판에서 경쟁했다. 이규혁은 “지금은 선수와 코치 신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정말 친구 같은 사람이다. 마지막 경기에 대한 생각을 할 때도 친구처럼 많이 호응해줬다. 그래서 그 친구도 함께 만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레이스를 돈 뒤 링크장을 한 바퀴 더 돌면서 이규혁은 복잡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1991년 이후 23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이규혁에게 올림픽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대회였다. 세계선수권 4회 우승, 세계신기록 두 차례 작성 등의 성과를 냈지만 유일하게 올림픽 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소치 대회까지 여섯 차례 올림픽에 나섰지만 이규혁은 “결국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가 됐다. 부족한 채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이 없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섯 차례나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었다. 올림픽을 통해 아팠고, 성장했다. 그는 “올림픽은 내게 핑계였다. 올림픽 메달이 없어서 스케이트를 계속해왔고, 그래서 즐거웠다”고 했다. 이규혁은 “사실 소치 올림픽에선 메달권에 들기 어려웠는데도 많은 사람이 응원해줬다. 덕분에 내가 부족한 걸 알면서도 더 노력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난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스케이트 선수인 것이 행복했다”고 미소 지었다.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이규혁은 링크를 떠난다.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 모두 은퇴한다. 4년 뒤 평창 올림픽까지 버틸 자신이 없어서다. 이규혁은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식스팩은 온데간데없고 복부에 혈관이 보이더라. 그러면서 내 선수 생활은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4년 뒤에 뛰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때는 우승 후보가 아닐 것이다. 목표의식도 없기 때문에 당분간 얼음 위에는 절대로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세 살부터 국가대표로 뛰었다. 평생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다. 경쟁에 지친 그의 은퇴 소감은 이랬다. “앞으로 누구와 경쟁할 일이 있다면 져 줄 것이다.”

소치=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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