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네를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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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들은 언제나 개척정신으로 살아간다고 두 동생은 이삿짐을 꾸리며 서글퍼 하는 나를 위로한다.
우리가 셋방을 얻을 땐 언제나 정리돼 있지 않은 숲이 무성한 택지에 길도 제대로 없는 곳을 택한다.
값싸고 또 손쉽게 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내 몇 개월이 못 가 한집 두 집 새집이 들어서고 좋은 길이 생긴다. 그러면 덩달아 방 값도 껑충 뛰어오른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또 짐을 싸고 새로운 곳을 물색해서 이사하고…. 나는 이제 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앓아야 하는 이사 공포증에 걸려 버렸다.
이번엔 좀더 오래 몸담아 살리라 하고 길에서 좀 떨어진 군자동 꼭대기를 택했는데 이 동네 복판으로 동부 간선도로가 생긴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불도저」소리와 「크레인」차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집 앞 공터엔 또 망치소리와 벽돌을 나르는 분주한 소리가 들려 온다.
가을과 함께 이곳에도 다시 몇 가구의 포근한 보금자리가 마련되고 집 앞길엔 머지않아 정규 운행「버스」가 다니리라. 그러니 우리는 여기를 또 떠나야 한다. 더 한적하고 아직도 망치소리가 귀에 울리지 않을 곳으로.
이 많은 집과 이 많은 불빛 속에 나와 두 동생이 가진 것은 책상과 삶처럼 귀중한 책들뿐이지만 앞으로 이렇게 새집들이 들어서듯이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새 동네를 찾는다.
노남희<서울시 성동구 군자동125의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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