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얼룩진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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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국체육대회가 이래도 좋은가.
성화의 불길아래 각종사고로 얼룩진 제55회 전국체육대회는 현행 제도의 모순 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체전자체의 체질개선을 불가피하게 했다.
실제로 제55회 전국체육대회 만큼 각종사고가 잇달아 일어난 체전도 일찍이 없었다.
부정선수 한 명으로 인해 배구경기가 24시간이나 연기되었고 심판판정에 대한 불복으로 각 경기장마다「게임」이 몰수되거나 지연되는 소동을 빚었는가하면 「마라톤」은「레이스」도중 「코스」를 변경하는 운영상 졸작을 만들기도 했다. 뿐만 인가. 궁도에선 채점을 조작하는 어처구니없는 추태를 보였고 「택시」를 타고 달려든 단축「마라톤」선수에 축구「하키」에선 선수와 선수, 심지어는 응원단과 응원단의 싸움까지 빚었다.
이 가운데 3일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배구사고가 최악, 배구경기를 완전 마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번 체전을 소용돌이 속에 빠뜨리고도 남았다.
사고의 발단은 전남광주실전의 서춘자의 자격문제-. 「게임」을 맡은 이홍진 주심은 실업「팀」이 등록 후 2년 후에야 다른「팀」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등록규정을 내세워 서춘자를 부정 선수로 인정, 광주실전에 몰수「게임」선언했으나 대한체육회가「사전열람」에 통과한 유자격 선수로 해석을 내림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게임」이 몰수되자 전남임원과 응원단 50여명은 대농체육관에서 3시간동안 농성, 서춘자가 유자격 선수임을 주장하면서『심판을 죽여라』고 아우성이었고 심지어 광주실전 박용재 기획실장은 심판부장 최이직씨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한편 광주실전과 재 경기를 강요당한 경북대와 그 다음 경기의 한성여대는「코트」에 들어섰으나 움직이지 않은 침묵의 항의를 거듭, 하지만 배구협회와 체육회의 태도가 더욱 비판의 대장이 된다.
경기 및 선수에 대한 관할권이 각 협회에 있는 한 유자격 선수로 판정 내린 체육회의 처사도 먼저 월권행위였고 더욱 일단 몰수「게임」으로 선언한 판정을 재 경기토록 하라든가, 해당 경기의 심판을 바꾸도록 하라는 지시는 경기의 관할권조차 모르는 처사로밖에 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배구협회도 마찬가지, 일단 몰수「게임」을 선언한 후 체육회의 지시 한마디로 재 경기토록 하는 우유부단과 한때 난동이 일어나자 집행부 전원이 자리를 비우는 무책임은 앞으로 반드시 거론되어야 마땅하다.
여하간「마라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고가 시·도간의 과열경쟁으로 보아 틀림이 없다.
「레이스」도중「코스」를 변경해야했던「마라톤」은 그 운영 면에서 육상연맹이 책임져야할 문제-. 더욱「마라톤」보다 하루 앞서 열린「럭비」는 경기장인 고대의 분위기 때문에 다른 경기장으로 찾아갔고 더욱 53회 대회 때에도 이와 비슷한 사태로 다른「코스」를 택한 적이 있다고 보면 「마라톤」의 돌연한「코스」변경은 전적으로 육상연맹의 무책임한 탓이다.
그밖에 대회 최종일 배구여자부결승전인 부산남성-전남조대여고의「게임」이 심판판정에 대한 전남 측의 집단항의로 4시간동안 중단된 사고도 과열 경쟁 탓이며「택시」를 타고 단축「마라톤」을 달린 부산의 홍점표, 몰수「게임」제1호가 된 이화여대 「하키팀」이 , 담합채점으로 오점을 찍은 여고부 궁도, 우수선수에게 질질 끌려 다녀야 하는 임원 등 모든 불 합리가 한 점의 득점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다.
전국체육대회가 이래도 좋을 수는 없다.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채점제의 철폐가 바람직하다.
이른바 「올림픽」 방식인「메달」순위로 한다면 수준이하의 선수가 나올 리 없고 이로 인해 시·도 체육회의 재정고민도 훨씬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경기성적에도 이번 체전은 육상·수영·역도 등 기록경기가 근래 없는 흉작이었고 구기종목 역시「테헤란」대회직후의 대회이기 때문에 저 수준을 면치 못했다.
체육회는 사전열람제의 철폐뿐 아니라 경기 및 선수에 대한 관할에서 손을 떼고 체전의 종합운영만을 담당해야 할 것이며 각 경기 단체 역시 자력으로 체전의 경기를 집행할 수 있는 기능의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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