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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위안부 문제, 형언할 수 없는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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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한·일 관계 정립’을 주제로 강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강연에 앞서 기념촬영 후 참석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무소속 안철수 의원, 정의당 천호선 대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무라야마 전 총리,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김성룡 기자]

12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의 강연이 열린 국회 의원회관엔 주최 측인 정의당의 심상정 원내대표와 천호선 대표 등 20여 명의 여야 의원이 참석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모습을 드러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흔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강연을 이어갔다.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은 게 아니라 한·일 관계 재정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설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를 초청한 심상정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무라야마 담화가 지난 20년간 순조롭게 계승·발전되지 못하고 오늘날 우경화로 이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무라야마 전 총리의 고견을 듣고 평화와 공존의 동아시아 시대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다음은 중요 강연 내용 요약.

 ◆무라야마 담화=1994년에 자민당이 총선거에서 져 야당이 됐다. 70명밖에 없는 소수정당(사회민주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내각의 탄생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 과제가 뭘까 생각해 보니 전후(戰後) 청산을 하는 것이었다.

 94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각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 지원으로 동남아의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 하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전쟁 청산도 안 하고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대국이 될 우려가 있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귀국 후 과거를 반성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새로 태어나는 일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다. 사회당 정권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부결되면 그만두겠다는 각오였다. 일본 내, 특히 우익 쪽에서는 상당한 반대가 있었다. 저에게 매국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 누가 매국노인지 되묻고 싶었다. 담화 발표 이후 한국과 중국에서 ‘담화에선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일본 국내에선 담화에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의 대답은 ‘언론의 자유가 있어 여러 생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소수에 불과하다. 담화 지지가 압도적 다수이기 때문에 그 점은 안심해 달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독일 대통령은 폴란드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그에 필적할 만큼 무라야마 담화는 용기를 가지고 발표한 것이다. 담화 발표 후 이어진 내각은 모두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국·중국,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 서약했다.

 ◆아베 정권=아베 정권도 2차 집권한 뒤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한다. 계승하지 않을 경우 국민 전체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담화를 부정하면 각료를 그만둬야 한다. 아베가 무슨 말을 하든 총리로서 그 담화는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안심해도 된다.

 지금은 작은 일로 국가들 사이에 갈등할 시기가 아니다. 일본 헌법은 영구적으로 평화를 바라는 헌법이다. 여러 전쟁이 있었지만 헌법 때문에 자위대는 전쟁을 안 했다. 일본 국민은 이 헌법을 소중하게 지켜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앞으로도 유지해 나가는 게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일본 국민뿐 아니라 한국·중국도 그런 점에 대해 이해해 주시고 한국·중국을 위해서도 담화를 이어 나가고 헌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어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림도 봤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군, 업자들, 여러 관계자, 그리고 위안부 증언 등 여러 조사를 통해 정리한 게 고노 담화다. 고노 담화를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3당이 ‘50년 문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에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모금도 하고 정부도 응분의 돈을 내서 국민평화기금이란 걸 만들게 됐다. 한국·대만은 미해결된 게 굉장히 안타깝다.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상한 망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부끄럽다. 일본 국민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 이해해 달라.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의 미래=세계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아시아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중·일 3국의 협력이 플러스가 된다는 점, 지금의 (동북아 갈등)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일본 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어떻게든 역사 문제를 청산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의원연맹이 그런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 줬으면 한다. 가장 좋은 계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전 총리가 선언한 한·일 공동 파트너십이다. 그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자.

 99년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도 굉장히 역사적인 한·일 공동선언이 있었다는 걸 배울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이랬지만 앞으론 협력·화해하자는 선언이었다. 가능하다면 그 선언문을 독립기념관 출구나 입구에 게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린 바 있다.

글=박성우·이윤석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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