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비극>
영락교회가 월남한 피난민들의 피땀으로 세워져 현재의 본당에서 6월18일 주일에 감격적인 입당예배가 있은 다음 새 예배당에서 두 번째 주일예배를 본 1950년 6월5일 비극의 동란이 터졌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예배가 끝난 다음에도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예배당 안팎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미군과 국군이 미국식으로 주말휴가를 즐기는 것을 알고 북괴는 주일 새벽에 38선에서 일제히 공격해왔던 것이다.
당시 주한미군 수뇌들은 한국군이 북진 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킬까 우려해서 한국군에 대한 장비 지원은 소총정도였고 포나 「탱크」 같은 것은 전연 없었다.
그래서 인민군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3일만에 수도 서울까지 진주해 왔던 것이다. 그때 나는 한경직 목사와 함께 영락교회 일을 보고 있었는데 27일 밤 무슨 대책을 세우기 위해 청파동 홍 집사 댁에 모두 모였다. 한 목사를 비롯, 김성호·전 석공 총재 감린모 등 7, 8인이 참석했다.
우선 저녁을 그 집에서 보내면서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자고 하였는데 그 날밤 한강 인도교는 끊어졌고 아침에 젊은 집사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벌써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강을 건너 영등포 가서 하회를 기다려보자고 논의가 되어 각기 길을 떠났다. 지금 마포대교가 놓인 강둑에 갔더니 벌써 인민군의 「탱크」가 한대 와있고 사람들은 인민군과 「탱크」 구경에 몰려 있었다.
거기서 서강 쪽으로 조금 가다가 조그만 배 한 척을 만났다. 마침 선천신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을 졸업한 잘 아는 장익삼 군이 있어서 우리 일행은 그 배를 탈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영등포도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고 시흥에 갔을 때야 뚜껑 없는 헌 「지프」를 하나 빌어 탈수 있었다.
수원까지 가서 우리는 김두한 일행과 만나 대민 봉사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는 벌써 대전으로 이동했고 국방부 정훈국 분실만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한 목사만 먼저 대전으로 가서 그 형평을 알아보기로 했는데 이틀 후에는 다같이 대전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YMCA에 모여든 교계 인사들은 한국 기독교 구국 회라는 것을 7월4일에 조직했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에는 일반 사회 유지 및 단체들이 유석 조병옥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구국 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이 구국 회는 조 박사가 백성욱 다음으로 내무장관이 되는 바람에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기독교 구국 회는 국군의 평양 입성과 함께 위문·선무·원호 사업을 했고 1·4후퇴로 부산까지 가서도 계속됐다. 나는 당시 원호부장이란 직책을 맡아 대구서 사과들을 사 가지고 작은 규모의 합창단과 여흥을 할 수 있는 몇 사람을 데리고 안동까지 위문을 가기도 했었다.
또 믿는 청년들로 십자군을 편성하여 구국대열에 참여케 하기도 했다.
이런 동란 중 인민군의 포악성을 잘 모르는 일부 목사들은 공산당도 사람이겠지 하고 서울 등지에 남았다가 이북으로 끌려가든지 혹은 잡혀서 지독한 고문을 받고 마지막에는 무참한 총살을 당하기도 했다.
나의 대 선배이면서 신학교의 동기동창 가운데 유명한 순교자 두 사람이 있다. 한 분은 김예진 목사로 얼마 전 태국 선교사로 갔다가 지금 미국 성서 공회의 지방총무로 있는 최찬영 목사의 장인이다. 김 목사는 3·1운동에 관련되어 옥고를 치른 후 상해 임정에서 일하기도 했고 용천과 만주 봉황성에서 교역할 때는 일경에 의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는 월남하여 현 후암교회의 전신인 혜천교회를 설립한 분인데 동란 중 인민군에게 잡혀서 「리어카」에 탄 채 총대로 얼굴을 얻어맞으면서 시가지를 끌려 다녔고 결국은 천호동에서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다른 한 분은 여순 반란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공비를 살려서 믿음의 아들로 만든 손양원 목사이다. 그는 9월20일께 인민군에게 끌려가면서도 찬미하고 전도하다가 결국은 총살당하고 말았다.
6·25 사변 중에는 서울에서 만도 남궁혁·송창근·김유정·박현명 등 50여명의 목사들이 납치되어가서 아직도 소식을 모르며 전인룡·김윤실 목사 등은 인민군이 물러가면서 서대문 감옥에서 총살당하고 말았다. <계속>계속>
(1158)<제40화>기독교 백년(29)|강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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