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상화 선수가 자랑스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올림픽 메달은 신이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 저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경쟁하는 장이어서 약간의 우열로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간혹 신도 메달에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산과 같은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그렇고, 우리 빙속여제(氷速女帝) 이상화(25) 선수가 그렇다. 함께 경기를 치른 올가 팟쿨리나(러시아, 빙속 500m 은메달리스트) 선수도 “이상화 선수는 우사인 볼트 같다”고 했다.

 12일 새벽 소치올림픽 빙속 500m 경기에서 이상화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2차 37초28, 1·2차 합계 74초70)을 세우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는 모습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이 선수는 홀로 압도적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는 이미 이번 시즌 월드컵 시리즈 8회 중 7회에서 우승했고, 세계신기록을 4번이나 갈아치웠다. 오직 싸울 상대는 자신밖에 없었다. 외신들도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실수하길 기다리는 것뿐”이라 했다. 그의 앞에서 기록경기에 취약한 아시아인의 신체조건과 체력적 한계 등을 운운하던 말은 모두 ‘허언(虛言)’이 됐다.

 워낙 압도적인 그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것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이다. 스물한 살, 자칫하면 우쭐해지고 방황하기 쉬운 그 나이에 이 선수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기록도 없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빙속 부문의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엄청난 성취를 한 후에도 흔들리거나 우쭐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무릎에 물이 찬 상태에서도 남자 선수들조차 하기 어려운 훈련을 자청했고, 고통스러운 훈련과정을 견뎠으며, 육체적 고단함 속에서 식탐을 이기며 체중조절에도 성공했다. 그는 진지하고 우직하게 나날이 새로운 기록으로 갈아치웠다. 우리는 이상화가 자랑스럽다. 그가 동료에게 한 덕담처럼 남은 경기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이상화의 기(氣)를 받아 모두 좋은 성적으로 이번 올림픽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