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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중과의 대화는「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바티칸」박물관의 회화 실이나 귀중품 진열 실에서 천장 귀퉁이의 TV 장치가 유난히 눈에 띄게 작동하고 있는걸 보고 어느 미치광이 청년이 쇠망치로 조각품을 때려부순 사건을 곧 연상했다. 진열실의 상황을 감시하기 위한 이런 TV장치는 동경의 국립박물관 동양 관에도 곳곳에 비치돼 있지만 여기서는 별로 쓰이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박물관이나 손가방을 맡겨두고 홀가분하게 구경하라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상례. 한술 더 떠서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서는 공항에서와 같은 짐 검사가 철저하게 실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안조처를 위한 그런 TV장치는 대체로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해서 피하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어느 박물관·미술관이나 특히 도난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은 굉장하지만 실은 그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여간 조심하지 않는다. 「파리」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건물 주변에 잘 식별 안 되게 괴를 팠거나 창 밖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덴마크」왕립미술관에선 유리창마다 가는 철사를 늘였고 대체로 문 자체에 특수 장치를 해 두는 게 보통이다.
막중한 유물들을 안전하게 보전한다는 것은 박물관의 최대 임무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해서 안되고 도리어 터놓고 공개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은 오늘날 박물관의 운영의 묘이고 이율 배반.
서독이나 북구에선 국립이든 사설이든 아예 입장료라는 게 없다. 영-미에서도 국립의 경우는 그러한데 불-이-일의 박물관에서는 얼마가 됐든 철저하게 받는다. 그 차이는 사회의 경제적 사정에도 기인하겠으나 그보다도 유물 위주냐 관람객 위주냐 하는 사고차이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점에서는 북구 측의 박물관이 훨씬 진취적인 방향이다.
어쨌든 공중이 갖는 여가의 대부분을 여기에 이끌어들여 몰두하게 하려는 데는 구석구석의 잔손질이 여간 아니다. 쾌적한 공간에서 스스럼없이 구경하게 한다든 가 하나 하나의 물건들을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 주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가 줄줄이 서서 숱한 관람객에게 일일이 설명을 들려줄 수도 없는 일. 근년에 설치된 최신 시설의 박물관이면 으레 환등기를 진열 실 곳곳에 마련하고 혹은「이어폰」도 비치했다. 사람들은 그 앞에 모여 앉아 역사적 상황이나 일련의 유물에 대한해설, 또는 발굴 광경 등을 잠시 보고 뗘난다.
연구박물관으로서 본보기를 삼을만한「파리」의 국립 민속관은『관람객과의 대화』『이해를 위한 편의』에 만전을 기했다. 진열장 하나에 환등 실이 하나 꼴이고 그 사이 사이에는 참고자료의 도서열람대도 마련돼 있다. 이웃하여 수 개 국어로 즉석 번역돼 나오는 영사실이 있고「세미나」실도 가지가지다. 가령 마차의 역사를 알려한다면 유물과「슬라이드」영화「필름」책자나 기타「인덱스」등 환히 찾아보게 갖춰 놓았다. 거기서는 하찮은 물건도 빛이 나고, 대중을 위한「서비스」가 무엇인가를 실감케 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은연중 그 분위기에 젖어버리게 하는 것은 충분한「서비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기 안내인이 붙어 서서 이끌지 않아도 절로 이끌려 가는 분위기. 그게 바로 소중한 대화의 방식이다.
유물 관람에 저해되지 않는 한도로 해설 판을 옆에 세우거나 심지어 빼닫이 속에 비치하기도 한다. 이해를 위해 곁들인 모형이나 복원 품 또는 사진도 적지 않다.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라면 진열장 가에 손잡이를 달아 놓았고. 장 앞으로 나지막한 토막 의자를 비치한 것은 반드시 전문박물관에 한 한 것일까. 방바닥에 어쩔 수 없는 턱이 생겼다면 혹은 넘어질세라 사면으로 감싸 발랐고 진열실 사이의 통로나 계단의「라이팅」마저 결코 소홀하지 않았음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쾰른」의「뢰미쉬」박물관에는 진열 실 복판에 흡사 유적을 복원해 놓은 듯한 간이 도서실이 설치됐는데 어른 보단 어린이들이 많았다. 「뉴요크」의「메트러폴리턴」박물관에는 아예 「주니어·뮤지엄」(어린이들을 위한 방)이 따로 있다. 어른들이 두루 관람하는 동안 애들은 여기서 저들의 흥미대로 떨어져 놀고 있었다.
이밖에도 유물 감상 이외에 특수한 여러 활동에 필요로 하는 영사·음악·「세미나」「캐피티어리어」(간이식당)까지 모두 갖춘다면 박물관의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상적이다.
그래서 박물관 요원이란 그 온갖「서비스」를 위한 전문가인 셈인데 아직도 우리 나라에선 관람객과 대화의 위치에 서 있지 못하다. 경복궁의 박물관이나 민속관·덕수궁의 미술관을 보면 관람객이 걸어서 드나드는 길로 그들의 승용차가 질주한다. 차 탄 사람과 그 먼지 속의 사람과는 원천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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