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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대학 입시에 독서 설문을|서광선(이대교수·철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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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린이들에 독서의 본보기를>
『세월도 빠르다. 벌써 「독서주간」이구나』연중 행사의 하나를 가지고 떠든다고 은근히 나무란다. 1년 동안 이렇다할 책 한 권 쥐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독서주간」이냐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은 그래도 소망이 있는 편이다. 「독서주간」은 공부 안 하는 학자나 책 안 읽는 학생들 정도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누구를 위하여」「조국의 책 안 읽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주간」동안만이라도 책 한 권쯤 뒤적거려 보거나, 가까운 서점 한곳에는 꼭 들러 보라거나, 서재·응접실 장식용으로 사들여 놓은 무거운 책들이 어떤 것이었나 한번쯤 들여다보기만 해도 의의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지난 한해 동안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 한번 점검을 해 볼만도 하다.
이러한 「독서주간」을 수시로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한때 대학입학전형이나 취직시험 때 하는 설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흥미있게 읽은 책 3권만 적으시오」라든지 「댁에서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잡지와 신문을 말하시오」이다. 거짓말을 했다가는 구술면담에서 곧 발각이 나곤 했다고 한다.
회사 취직 시험이나 공무원 채용시험에 이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고등학교 평준화에 따르는 대학입시제도의 개혁에도 가령 「독서설문」을 고려할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책을 읽을 줄도 모르거니와 교과서와 입시지도 참고서적 이외엔 책 한 권 스스로 읽어 본 적이 없는 학생이 수두룩한 대학은 나라와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부담스럽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독서주간」에 가정마다 한번쯤 물어 봐야 할 것이 있다. 아이들이 밤에 잠들 때에 책 속의 글 한 줄이라도 읽어 주고 있는가? 동화책을 어떻게 선택해서 몇 권이나 사준 일이 있는가? 도대체 집안의 아이들이 세 살 네 살 때부터 어른들의 책 읽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는가? 책 읽는 사람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의 장래란 책 읽는 것을 멸시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읽은 내용을 간단 간단히 물어 보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책값이 너무 비싸서 문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책값 비싼 것이 문제가 아니라 책 같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 같은 책이 나오려면 출판사의 「기업양심」만이 문제가 아니라, 저자와 역자의 「학문적 양심」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시간의 문제와 고료와 인세의 문제를 내세운다. 그 싼 고료와 얼마 안 되는 인세에 과세까지 하게 되면 책값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필자의 부담만 과중 된다. 학자가 책을 쓴다는 것도 과중한 강의시간외에만 하게되니 「일생일대의 업적」이란 희귀해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학자의 저술이 귀한 나머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서평이란 더욱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출판계와 독서계는 침체를 면할 길이 없어져 버린다.

<독서 소홀히 하는 대학 교육>
그래도, 그리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출판계는 안간힘을 써서 양서를 염가로 내어놓고 있다고 본다. 우리 출판계의 노력에 비하면 아직도 읽지를 않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된다. 특히 우리 나라 대학생 인구에 비해 책들의 초판 부수는 너무나도 적다(1년에 5백부 팔리는 책은 성공적이라고 한다면 좀 너무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학생의 독서인구의 숫자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대학교육 자체가 자율적이거나 지도를 통한 독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교수들의 강의에만 의존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교수 자신들이 절감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에게 독자적인 독서와 탐구를 권장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수들 자신이 신간서적과 최근 학계와 출판계의 독서정보에 어두운 이상, 학생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학생들이 스스로 읽은 책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식의 교육을 생각하기에는 우리 나라 대학의 강의구조와 교실의 크기가 너무도 문제가 된다.
그래도 소수의 학생들이지만 책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이상하게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또한 크게 문제가 된다. 책을 읽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지도할 수는 없을지언정, 독서를 「위험시」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것이 된다.

<독서·사고의 소중함 알아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사고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유망한 것으로 보고 기뻐해 주고 격려하고 북돋워 주는 「독서사회」만이 명랑한 사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독서주간」의 행사를 내놓으면서 독서를 「위험시」하는 사회야말로 위선이요, 자가당착이 아닌가?
독서의 자유는 표현과 학문의 자유와 병행한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독서 없는 학문의 자유는 공허하며 또한 학문의 자유 없는 독서는 형식과 공염불로 끝나는 「독서의 계절」로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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