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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직제개편 계기로 살펴본 생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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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8월×일 서울 동대문경찰서 수사계 K경사는 관세법위반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다가 관계부처의 X과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취조태도가 돌변했다.

<사소한 사건도 눈치껏>
신문을 시작한지 10분도 못돼 걸려온 전화는 『잘 부탁한다』는 간단한 내용. 경찰생활 8년째가 되는 K경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 잘 알만큼 요령이 생겼다.
전화를 받고 난 K경사의 어조는 갑자기 맥없이 가라앉고 조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슬 빠져 넘어갔다. 이 사건의 피의자가 불구속 처리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경찰 위에는 상전기관도 많다. ○○기관, ××기관, △△기관에 이르기까지 상전 아닌 상전이 유형 무형으로 지시하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고 K경사는 털어놨다.
이들은 간단한 내용의 전화나 「메모」한 장으로 일선 경찰관들의 수사를 좌지우지 할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실정.
N경찰서장 P총경은 경찰이 소신대로 수사를 할 수 있는 사건은 절도·강도·치기배 등 잡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소한 고소·고발사건에까지 고소인·피고소인의 「배경」이 등장, 담당형사는 양쪽의 눈치를 저울질해야 할 판.
이 때문에 경찰관들은 『소처럼 일하면서도 기생처럼 눈치를 살펴야 된다』고 푸념한다.
서울S경찰서 형사계 M경위(46)는 지난 7월초 의료법 위반혐의로 입건된 의사 조모씨(47)를 엄중처벌 하라는 서장의 지시를 받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담당 A검사(33)로부터 출두명령을 받았다. A검사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 M경위를 향해 『얼마를 먹었기에 이 따위로 수사를 해!』하고 폭언을 퍼부었다. M경위가 조용히 설명을 하려하자 A검사는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하고 소리쳤다.
13살이나 연하인 A검사에게 무안을 당하고 나온 M경위는 『한번 검사실에 불려갔다 불벼락을 맞으면 1주일동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사법경찰 관리로서 검사와 경찰내부의 상관에게 이중으로 복종하고 명령을 받아야하는 문제 때문에 늘 눈치를 살펴야 할 때가 허다하다고만 한다.
형사소송법 제1백96조와 검찰청법 제5조 등에는 검사는 범죄수사공소제기와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및 사법경찰관리의 지휘감독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범죄수사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검사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의 이행을 둘러싸고 검사와 사법 경찰관과의 사이에 다툼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S제재소 화장실 안에서 25살난 처녀 가정부가 고혈압으로 숨진 사건이 일어났던 때의 일.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C경찰서형사계 K경감(43)은 담당 P검사에게 변사사건 발생보고와 함께 수사지휘를 요청했다.

<잘못된 책임은 독차지>
그러나 P검사는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고 『타살혐의 없으면 가족에게 인도할 것』이라고만 지시했다. P검사의 지휘는 구체적인 수사방향에 대한 지시는 한마디도 없는 막연한 내용.
K경감은 그래도 타살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체해부를 의뢰했다.
해부결과는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 다음날 K경감의 보고를 받은 P검사는 『젊은 여자가 어떻게 고혈압이란 말이야. 시체해부가 잘못된 것 같으니 해부 담당자를 데려와』하고 호통쳤다. 한참 뒤에 불려온 검시원의 설명을 들은 P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없이 돌려보냈다.
K경감은 P검사가 납득한 것으로 짐작, 다음날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P검사는 『서류가 너무 산만하니 「브리핑·차트」를 만들어 오라』고 지시를 했다.
검사는 범죄수사에 대한 직접 지휘와 지휘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속·압수·수색·검증 등을 직접 지휘토록 돼 있지만 사실상 이 같은 수사기능은 경찰이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만 추궁 당하는 실정이라고 불평이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검사가 수사를 직접 지휘한 사건은 0.77%. 나머지 99.23%는 검사의 직접 지휘없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

<외청으로의 독립시급>
그러나 검사측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현행법으로 보아 검찰이 수사지휘를 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사건이 터지면 수사의 주체가 되는 것은 경찰로, 검사 때문에 경찰수사가 위축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 서울지검 S검사는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 것은 현행법상 너무나 당연하며,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다고 해서 경찰수사의 독립성이 침해된다고는 볼 수 없다.
경찰의 독단 전횡을 막아 인권을 옹호하고 증거보완지시, 서류상의 하자보완 지시 등으로 경찰수사의 미비점을 보완, 진실을 밝히는데 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지검 P검사는 경찰이 가끔 수사권의 독립성 침해 운운하는 것은 조직상 경찰이 내무부에 예속, 사건에 따라서는 공정하게 수사를 할 수 없고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그러는 것이며 그 때문에도 검사의 지휘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P검사는 검찰도 법무부 산하의 행정관청으로 통치권의 영향을 받는다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검사는 법률상 독립관청으로 경찰에 비해 수사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 전문가들은 경찰이 외청으로 독립하고 수사요원의 자질이 향상될 때까지는 현행제도를 유지하면서 경찰에 미치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할 수 있는 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있다. (끝) <연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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