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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일본인의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연 5일째 계속되고 있는 반일 시위 「데모」의 열도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고, 이러다가는 무슨 불측의 사고를 낼지 일촉즉발의 위기적 상황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막바지에 이른 한·일간의 외교적 교섭의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어떤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냉철한 이성으로 국가간 관계의 파국적 사태를 막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양식 있는 모든 국민의 태도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8·15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야만 우리 국민의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대일 불신 감정은 물론 역사적으로 얽히고 설킨 불행한 과거를 가진 한국민족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자연 발생적 민족 감정의 표시라 할 수 있다. 일국의 국가 원수를 저격하려는 사건이 다른 날도 아닌 8·15 광복 경축식전 석상에서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저질러졌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대통령 영부인이 비명에 간 참변이 벌어졌는데도 직접·간접으로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일본측이 그 수사 과정에서 석연치 못한 태도를 지속하고, 더군다나 일본 외교 당국의 책임자가 때를 가리지 않은 무분별한 발언을 거듭했다는 것은 재앙을 당한 민족으로서 도저히 좌시 할 수 없는 국민적 모욕을 느끼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국민의 일부가 일본과 일본인 전체에 대해서 극한적인 반감을 행동으로 표시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심지어 일본 공관에의 난입까지에 이른 사태를 나무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불가항력적인 자연법적 자기 보위 행동으로서 정당성을 부여치 않을 수 없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지난 6일에 있었던 일본 대사관 난입 사건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신속히 일본측에 유감의 뜻을 표하고, 관련자들을 엄중 처단하는 등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이 격한 시위 행동의 양상이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음은 바로 이 같은 자연 법적인 자기 보위 본능의 표현으로 볼 때, 이제 정부 당국의 힘만으로써는 이를 규제하기 곤란할 정도에 이른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듭 8·15 사건 처리에 대한 일본측의 더한층의 협조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의 이성 회복을 엄숙하게 요강해야 할 절박성을 통감하는 것이다. 본난이 되풀이 지적했듯이 노도와 같은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사람들은 어떠한 국가간의 분쟁도 결코 폭력이나 격한 시위의 힘만으로써는 해결된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켰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물며 아무리 흥분했다고는 하지만 대일 불신감을 표시한다하여 한국에 와 있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들에게 신체상의 위해를 가하려 한다거나 그들의 일상 생활을 위태롭게하는 음식물이나 자동차 유류의 불매 운동을 전국적으로 결의하는 등 처사는 결코 현명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본측에 대해 우리가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할 것은 정상적인 외교 「채늘」을 통해 마땅히 떳떳하게 요구하고 관철해야 하겠지만,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으로서의 일본인에 대해 그들의 생명이나 신체상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절대로 삼가는 것이, 전국민이 반일 시위의 열에 들떠 있는 오늘의 상황하에서도 최소한의 국민적 양식이요,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외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에 대한 위해 행위로써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 일은 역사상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는 것을 명심하여, 이런 때일수록 우리 국민의 자중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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