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미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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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29차 「유엔」 총회의 개막을 며칠 앞두고 한·일 관계가 날로 악화되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3일에는 한·미 외상 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한·미 외상 회의에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제29차 「유엔」 총회의 한국 문제 대책을 비롯하여, 긴급조치 1호 및 4호 해제 이후의 한국 정세, 한·일 관계 등 한·미간의 공동 관심사가 논의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미국의 대「아시아」-대한 정책에 구조적인 변화가 예견되고 있는 시기인지라 한·미 외상 회의의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포드」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분단 국가에 대해서도 쌍무 협정 등을 채결할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주한미군을 기동 예비 대화하여 「괌」도 등에 재배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조만간 대한 군원 등의 삭감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한국에 대한 군원이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군사 원조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미군을 한국에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의회는 대한 군원을 대폭 삭감토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 의회 지도자들과 여론 지도자들의 의견은 주한미군을 철수함으로써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 같다.
회고컨대 해방 이후 최근까지의 한·미 관계의 역사는 그야말로 혈맹의 관계를 지속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공약한 이래 45년에는 군정을 통하여 한국에 민주주의의 씨를 심어주었으며 48년에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제일 먼저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50년 6·25동란 때에는 많은 전사들의 피로써 한국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의 안전 보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관계에서 비롯된 당연한 윤리적 유대 의식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요즘에 이르러 이 같은 긴밀한 유대 관계가 중대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한·미 관계가 원만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첫째 이유는 아마도 미국 측의 발언권이 약해졌다고 미국 정부가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 할 수 있다. 또 60억불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2억불 정도의 원조야 있으나 마나라고 보아 미국 정부의 입김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단순한 군원이나 원조 원수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고, 피로써 맺은 혈맹 관계라는 점을 고려하여 미국 정부는 더 한층의 충고와 격려로써 우방인 한국을 도와주는데 인색치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근자에 「닉슨·독트린」이라는 신고립주의적 정책에 따라 일본에 동북 「아시아」의 방위 책임을 분담시키고 자신은 서태평양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한·일 국교 체결과 우호 증진을 희망했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8·15 사건을 둘러싼 한·일간의 귀열은 미국으로서도 결코 소망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키신저」 장관은 한·일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막후 중재를 펼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 미국 정부는 극동 안보를 담당하여야 할 한·일 양국간 긴장의 요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파악하고 한·일 양국 관계가 보다 긴밀해지도록 거중 지역을 맡는데도 인색치 않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우리 나라 건국에 산파역을 했으며, 공산 남침에서 우리 나라를 구한만큼 앞으로도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며 자주 국방이 실현될 때까지 재배치를 연기하여야 할 것이요, 경제 원조도 재개하여 한국을 「아시아」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의 「쇼·윈도」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이상을 중도에서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키신저」 장관의 한국에 대한 우의와 미국 지도자들의 양식을 믿으며 한국의 안보와 경제 성장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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