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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 수집」타고 날뛰는 문화재 도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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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골동품 수집 「붐」이 일면서 물건이 달리게 되자 사찰·박물관·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문화재 (주로 비지정)가 도둑의 손에 수난을 맞고 있다.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은 종전까지 매장 문화재 도굴에 재미를 붙여왔으나 최근 매장 문화재 출토 금지 등으로 상품 공급이 고갈되자 수장가들의 과열된 수집욕에 따라 각 박물관·사찰 등을 닥치는 대로 털고 심지어 가보로 내려오는 남의 문중 또는 개인 소장의 문화재까지 마구 훔쳐내고 있다. 올 들어 관계 당국에 적발된 문화재 (비지정) 도난 사건만도 8월말 현재 전국에서 35건 22명이 구속되고 55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밖에 경찰과 한국 고미술상 협회에 신고된 것도 10여건. 이 가운데는 지난달 29일의 단국대 박물관 문화재 도난 사건 (7점), 8월20일의 경남 김해군 안병목씨 (69) 고미술품 등 도난 사건 (32점) 등 근래에 볼 수 없었던 굵직한 사건들도 끼여 있다.
단국대 박물관 사건의 경우 범인은 박물관 안에 경주에서 출토된 태환형 귀걸이 등 값비싼 것도 많았는데 신라 금불 동상·고려청자 등 팔기 쉬운 것 7점 (1천만원)만 훔쳐간 것으로 보아 골동품과 그 판매 「루트」에 밝은 자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0일 상오 2시쯤 경남 김해군 진예면 시예리 316 안병목씨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온 고미술품·서화·이조백자·벼루 등 32점을 몽땅 도둑 맞았다.
분실한 것은 주로 현재 심사정의 추경산수도, 겸재 정선의 송하도인도, 완당 김정희의 노완법첩, 대원군의 묵난화 등 값진 것으로 싯가 1천5백여만원 어치. 도둑은 안씨 집 담을 넘어 들어와 건넛방 문갑 안에 있던 이 물건들을 털어 갔는데 안씨에 따르면 1주전쯤 청년 2명이 찾아와 3차례나 물건을 팔라고 떼를 써 보여준 일이 있었다는 것.
또 지난 1월초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동 신두현씨 (33)도 5백년 전부터 가보로 내려오던 족보 보관용 문갑을 감쪽같이 잃어 버렸다. 이 문갑은 수종을 알 수 없는 가로 60㎝·세로 70㎝짜리 목제로 싯가 5백여만원. 신씨도 이 문갑을 도난 당하기 1주전쯤 안동의 골동품상 이모씨가 찾아와 세차례나 끈질기게 흥정, 1백50만원을 주겠다고 하던 것을 팔지 않았던 것인데 끝내 도난 당했다는 것.
이밖에 지난 7월말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 1리 함백산 정암사에서 1천3백년간 소장해오던 신라 자장법사의 법의 금난 가사를 도난 당했다. 이 가사는 선덕여왕이 분홍색 비단 바탕에 손수 금박으로 꽃무늬 수를 놓아 자장법사에게 하사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것. 도둑들은 감시가 허술한 사찰 안의 문화재에 특히 눈독을 들여 사찰 문화재의 수난이 많다. 이같이 박물관·사찰·종회 등에 보관중인 문화재의 잇단 도난 사고에 대해 골동품 업계에서는 골동품 수장가들의 파열된 수집욕과 대일 밀수품 등 수요에 비해 골동품 자원이 고갈된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고미술상 협회 부회장 한윤기씨 (48)는 『호리꾼들의 도굴이 뜸해지면서 상품 공급이 부쩍 줄었지만 수장가들은 계속 구미에 당기는 물품을 찾으므로 문화재 도범들이 이미 보관중인 문화재에 눈독을 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골동품 「브로커」들은 특정품의 원자가 있을 경우 각 지방에 사람을 보내 정보를 입수, 물건이 확인되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빼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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