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판 오브리법, 프랑스 실패 따라갈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국회 통과를 앞둔 근로시간단축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중소기업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지난해 11월 중소기업주들이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찾아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회 통과가 무산된 점을 의식한 것이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도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워 뿌리산업의 경쟁력을 해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법정 근로시간을 현재보다 24%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행 주당 최대근로시간(68시간)이 52시간으로 확 준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이다. 휴일근로(16시간)는 연장근로에 포함돼 사라진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방 장관은 반발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는 것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선결 과제”라며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노사가 합의하면 예외적으로 6개월간 8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게 해 주 60시간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을 위한 추가 배려로 들리지만, 사실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목을 매는 이유는 고용률 70% 달성의 관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확충하려는 것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포석이다. 노동계가 “근로시간을 줄여 생기는 일자리를 시간제로 채우려 한다”고 우려하는 것도 그래서다. 문제는 임금을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노사정 논의도 거의 없었다. 연세대 이지만(경영학) 교수는 “생산성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유연한 고용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법 따로, 현장 따로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고용률이 늘지는 않는다”며 “프랑스와 독일 등 전 세계 국가에서 이미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프랑스는 2000년 주당 근로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했다. 당시 노동부 장관의 이름을 따 ‘오브리법’이라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줄어드는 임금은 정부가 보전해줬다. 우리 정부도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올해 2조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인건비 보전과 설비투자비 등에 투입된다.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한국판 오브리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프랑스에선 이 정책이 실패했다. 의회는 “일자리 창출은 안 되고 인플레이션만 부추겼다”고 혹평했고, 언론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노동시장 개혁 조치”라고 비판했다. 독일은 우리와 달리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경제위기 때 고용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였다. 임금이 준 것은 물론이다. 한국은 이미 두 차례 오브리법과 같은 효과를 경험했다. 1990년 주 48시간을 44시간으로, 2004년에는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였다. 임금은 그대로였다. 고용률은 1% 안팎에서 요지부동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프랑스의 실패를 답습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번 조치로 임금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수는 없을 전망이다. 휴일근로가 없어지면 근로자는 휴일에 일하고 싶어도 못하기 때문이다. 2010년 말 현재 휴일근로수당은 전체 임금의 13.26%나 된다. 변수는 있다. 노조가 임금 하락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어떤 형태로든 휴일근로수당을 기본급이나 연장근로수당에 포함시키려 들 것으로 보인다. 노사갈등이 우려되는 이유다.

 고용부는 “임금을 떨어뜨리지 않더라도 생산성을 높이면 보전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46.9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74.4다.

김기찬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