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 세상을 바꾸는 '미친' 그들

중앙일보

입력 2014.02.10 00:01

업데이트 2014.02.1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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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강릉 교육계에서 유명한 일화 한 토막이다. 지난해 강릉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물었다. “강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요?” 아이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커피요!” 신사임당을 기대했던 교사는 당황했다.

강릉이 변했다. 신사임당과 경포대를 떠올린다면, 강릉의 과거만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 4일 강릉항 해변길(안목 해변)은 여느 포구와 달랐다. 횟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20여 개의 커피전문점이 줄지어 있었다. 모래사장이라고 해야 500m 정도인 데다 도축장·군부대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작은 어촌을 변하게 한 건 두 명의 도전자다. 커피 매니어들의 성지로 불리는 커피점 ‘보헤미안’을 연 커피 명인 박이추(65)씨, 커피공장을 차린 김용덕(54) 테라로사 사장이다. 송성진 강릉문화재단 예술사업팀장은 “‘지방에서 무슨 커피냐’고 비웃을 때 두 명인의 도전과 커피 축제가 만나 상상하지 못한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강릉시내 190여 개의 커피점과 5년간 커피축제를 찾은 관광객 109만여 명은 표피적인 변화일 뿐이다. 송 팀장은 “대학 등을 통해 강릉에서만 한 해 5000명의 바리스타가 양산된다”고 말했다.

 ‘퍼스트 펭귄’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모두 머뭇거릴 때 ‘미친 사람’ 소리를 들으며 미지의 바다에 뛰어든 김용덕 사장 같은 도전자들이다. 퍼스트 펭귄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과제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변변한 상가 하나 없었던 강원도 강릉 안목해변(왼쪽)이 커피를 만나 강릉의 새 명소가 됐다. 4일 저녁 추운 날씨에도 20여 개의 커피점이 있는 안목 커피거리는 성업 중이었다. [강릉=변선구 기자]

올해 각 기업의 신년사는 절박했다. 재계의 리더들은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이건희 삼성 회장), “선도 상품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구본무 LG 회장),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자”(허창수 GS 회장)고 외쳤다. 추격자로는 더 이상 먹고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이 선진국에 다가서면서 갖다놓고 베낄 참고서도 더 이상 없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과거의 기준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됐다.

 돌이켜보면 한국 경제는 퍼스트 펭귄을 통해 성장해왔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의 시작은 1971년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백사장 사진 한 장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자금을 구해 온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에서 시작됐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해보기는 했나”였다. 삼성 휴대전화의 오늘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과감한 결정과 휴대전화를 들고 지리산을 뛰어다닌 삼성전자 과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취급을 받았던 카카오톡은 SNS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게임 시장을 만들어냈다. 1조원 규모다. 오영호 KOTRA 사장은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든 중동 건설 근로자도, 반도체에 승부를 건 순간에도 기업과 근로자는 가슴 옥죄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누군가 퍼스트 펭귄이 되어 앞장서 뛰었기에 기적 같은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본지는 연중 기획으로 한국 경제의 희망이 될 퍼스트 펭귄을 소개한다. 작은 매장을 운영하는 1인 사업자도 있고, 세계적 히트작을 낸 대기업 연구자도 있다. 규모에 관계없이 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자동차 장인 김태성(43)씨의 올해 일감은 모두 예약이 끝났다. 그는 오직 수작업으로 단종된 갤로퍼를 개조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차를 만든다. 그는 “사명감·수익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자동차 튜닝 시장 규모(5000억원)는 미국(35조원)의 70분의 1이다. SK케미칼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후발주자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굵은 알약 대신 티 나지 않게 녹여 먹을 수 있는 필름형으로 제품 형태를 바꿔 시장 판도를 바꿨다. 부동의 1등 비아그라도 지난해 이 회사가 만든 제품 형태를 따라왔다.

변준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서울사무소 파트너는 “완벽한 전략을 만들겠다며 시간을 소비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미완의 전략이라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낫다”며 “여기서 오는 실패는 긴 안목으로 보면 기업과 경제에 소중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글=김영훈·김현예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바다에는 펭귄의 먹잇감도 많지만 바다표범 같은 펭귄의 적도 많다. 그래서 펭귄 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때 머뭇거린다. 이럴 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도 잇따라 입수한다. 처음 바다에 뛰어든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선 이 말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구자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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