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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구운몽』은 한문소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제까지 한글소설로만 알려져 왔던 김만중(1637∼1692)의 『구운몽』이 한글소설이 아닌 한문소설이었다는 새로운 학설이 고려대 정규복 교수에 의해 제기돼 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래 한글소설인지 한문소설인지 분명치 않은 것을 한글소설로 규정한 것은 1930년대 김태준이 펴낸 『조선 소설사』였다. 이 책은 『서포의 한글로 지은 남정기는 김춘택이 일부러 수고스럽게 한자로 번역하였다. 이로 보면 서포는 국문소설가였던 것이 분명하고 구운몽과 남정기는 서포의 원작인 정음본과 춘택의 한역한 한문본과의 두 종류가 이때부터 생겼다』고 밝힘으로써 『구운몽』이 한글소설임을 처음으로 확실히 한 것이다.
16년 동안 『구운몽』 연구에만 온갖 정력을 바쳐왔다는 정규복 교수에 의하면 『그러나 15종에 달하는 구운몽의 이본을 검토한 결과 국문본 외역본은 모두 한문본의 번역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하고 있다. 정 교수의 논문 『구운몽 연구』(고려대학교 출판부 간)는 이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에서의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

<문헌학적인 면에서>김태준은 『남정기』가 국문원본→김춘택 한역이라는 뚜렷한 기록을 근거로 『구운몽』도 똑같이 국문원본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구운몽』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서포에게 직접 글을 배운 서포의 증손 김춘택까지도 『남정기』의 번역경위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구운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또 서포가 어머니 윤씨를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는 기록으로써 국문원본설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윤씨의 한문실력은 오히려 서포를 가르칠만한 것이었으므로 이것도 타당한 근거는 아니다.

<서지학적인 면에서>『구운몽』의 이본은 모두 15종인데 이중 국문목판본·활판본·필사본 및 외역본 등을 한문 목각본과 그 문체를 세밀히 비교해 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한문 목각본의 번역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구운몽』이 국문원본이었다면 그 원작은 사멸됐다 하더라도 원작계열의 국문본이 전해 내려올 터인데 『구운몽』 한문본의 이계에 속할만한 원작계열의 국문본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국문본 가운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대학본과 국문노존본이 한문본인 노존본에서 번역되었는데 노존본은 한문본 중 가장 고본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1725년 이전).

<작품 구조면과 저작동기 면에서>『구운몽』의 배경은 중국으로 되어있고 작품가운데는 오언 칠언 상소문 등이 곳곳에 삽입되어있어 이들을 국문으로 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 『구운몽』의 국문본을 읽으려면 많은 주석의 도움을 필요로 할뿐 아니라 한문본 없이는 국문본의 주석도 블가능하다는 데서 더욱 알 수 있다.
또한 국문소설 『남정기』가 전기체로 이루어진데 대해 『구운몽』은 철두철미 중국의 장회체로 이루어진 장회소설이며 이것은 『구운몽』의 유사작이며 장회소설인 『왕루몽』이 한문소설이라는 점과도 일치한다. 이 같은 정규복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구운몽』을 최초의 국문소설로 규정한 국문학사는 물론 전반적인 국어교육도 재검토돼야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고려대)으로 제출 중이므로 이 논문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는 다소 늦춰질 것 같다. 김동욱 교수(연세대)등 국문학자들도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반대의견도 많이 나올 것이다. 다만 지금은 왈가왈부할 단계가 아니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만 말하고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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