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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찾아가는 박물관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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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서 퇴임, 야인으로 돌아간 지건길(60.사진)씨는 최근 며칠새 활이 잘 맞지 않았다.

1968년 문화재관리국 조사연구실 임시직으로 출발, 30여년간 몸담았던 문화재.박물관 인생을 마감하는 마당에 십수년간 아침 운동으로 손에 익은 활의 시위가 흔들린 것이다.

무령왕릉과 천마총 발굴에 참여하고 부여박물관장.경주박물관장.광주박물관장 등을 역임한 지관장은 한국 고고학과 박물관 역사의 산 증인이다. 감회와 계획, 후배들에 대한 당부를 들어봤다.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데.

"예고됐던 퇴직이다. 담담하다. 대과 없이 명예롭게 물러나게 돼 주변과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지금까지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 그동안 소홀했던 공부를 열심히 할 계획이다."

지 전 관장은 자신의 집무실과 접견실에서 정리한 책이 1만여권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사과상자 3백개 분량이다. 지관장이 연구에 매달릴 분야는 역시 자신의 전공인 거석 문화 쪽이다.

-일반인들에게 박물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것 같다.

"한국의 박물관은 유럽이나 미국.일본 등 문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어떤 면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박물관보다도 못하다. 동남아시아는 우리만큼 전란을 겪지 않았고 석조문화가 발달해 남아 있는 불교문화재가 상당하다. 반면 우리는 목조 건물들이 역사적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 볼 게 없으니 관람객이 찾지 않는다. 관람자들의 자세도 문제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로 꼽히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성당이나 절간 같은 조용한 관람 분위기가 필요하다."

지관장은 관람객을 기다리는 박물관이 아니라 국민을 찾아가는 박물관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밋밋한 상설전시 위주에서 벗어나 기획전시를 활발히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계층별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다. 부족한 점은.

"역시 예산과 인력이다. 올해 중앙박물관의 유물 구입 예산은 68억원이다. 드넓은 새 박물관을 채울 유물을 확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재 기증 문화 확산이 절실한 대목이다. 전문인력도 대폭 증원돼야 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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