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헌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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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은 고인의 유지를 생각할 때이다. 고인은 봉사와 헌신의 생활을 후인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그는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의탁할 곳 없는 노인들을 찾아 위로하는 일에 더없이 큰 보람을 느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인은 『죄스러운 생각이 든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한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에도 남다른 성의를 갖고 있었다. 「어린이 대공원」을 꾸미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바로 육 여사였다. 「어린이 회관」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즐겁게 해주는 일, 불행한 사람들을 들보는 일은 모두 사랑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또 나의 행복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생각이며 또 많은 사람의 불행을 나의 불행처럼 생각하는 마음이다.
한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에 많은 시인들의 시집 출간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때때로 증정받은 시집의 한구석에 『어느 고마운 분의 뜻에 힘입어』라는 구절이 눈에 띄던 일이 생각난다. 그 『고마운 분』이 바로 고인의 익명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인간이 사는 참다운 의미를, 그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고독한 사람이다. 그것은 신앙의 경지와도 같아서 인생의 경건한 뜻을 새기며, 모든 사람이 진실되게 사는 모습을 노래한다. 시인이 비록 가난하지만 어느 시대나 만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 「참다운 삶」을 추구하는 불굴의 자세 때문이다.
그러나 속세의 물결은 정신보다는 물정에 집착하기 쉽고, 겸손보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시인들이 가난하고 고독한 것은 이런 세파 속에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시인들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마음은 곧 참다운 삶을 추구하는 자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또 격려의 뜻이기도 하리라.
고인은 그처럼 사랑의 정신에 일관하는 생활을 하고싶어 했으며, 또 진실된 삶을 존경할 줄도 알았다.
우리는 고인의 유지에서 그런 뜻과 교훈을 찾아 오래도록 간직해야할 것이다. 사랑의 정신은 화해를 낳고, 화해는 모든 사람이 뜻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터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정치에서의 사랑은 민주주의의 참다운 실현을 뜻한다. 경제에서의 사람은 「있는 」의 겸손과 「없는 자」의 근면을 의미한다. 사회에서의 사랑은 정의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오늘 육영수 여사를 영결하며, 그 유지를 길이 새기기 위해서 새삼 고인의 교훈적인 생애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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