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저사람이 저승에 간 것 같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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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정희 대통령은 16일 밤 청와대 본관 빈소에서 영식·영애와 육인수 국회 문공위원장, 장덕진 농수산부 차관, 조태호씨 등 친족과 함께 밤을 새우며 .고 육 여사의 생전을 되새겼다.
박 대통령은 빈소 한가운데 걸린 육 여사의 영정을 보면서 『나는 지금도 저 사람이 저승에 간 것 같지 않다』면서 『지금 온 세상이 발달해서 녹음도 되고 TV도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말하는 목소리도 그대로 들을 수 있고 그 웃는 모습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도저히 저승에 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저 사람이 어느 행사에 참석했다가 막 돌아올 것 같기만 하다』고 하자 주위에 있던 유족들이 억눌렸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오열이 복받쳤다.
○…『참 저 사람이 저렇게 매사에 지성일 수가 없었다』고 말문을 연 박 대통령은 언젠가는 저 사람이 나병환자들을 위문하고 나서 그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면서 그 손을 나한테 그대로 내민 일도 있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박 대통령은 『그래서 나도 선뜻 그 손을 잡기까지 했다』며 끝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후 박대통령은 『나한테 술병이 선물들어 오면 저 사람이 나도 모르게 노인들에게 보내주는 등 노인들을 자기부모 섬기듯이 위했었다』면서 『아마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한결같이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 했고 어떤 일도 이런 지성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영식과 영애를 딴방으로 불러 지만군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고 『어머니는 내 대신 저승에 간거야』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박 대통령은 또 두 영애를 두손으로 한참동안 포옹하면서 오열을 금치 못하고 흐느꼈다.
박 대통령은 다시 빈소로 나와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실장, 임자도 부인을 잘 위하게 살아 있을 때 위해줘야 해』라면서 『나는 지금은 저 사람에 대해서 좀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다는 것.
박 대통령은 이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잠시 영식·영애와 친촉들이 자리를 비우자 혼자 방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남편으로서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오열했다고 한 측근자가 전했다.
밤을 새운 박 대통령은 새벽 6시 일반 문상객을 위해 차려놓은 신관 빈소에 들러 혼자 분향하면서 흐느꼈다.
○…빈소에서 고인의 오빠 육인수 문공위원장은 육 여사의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면서 『여러 남매 가운데 아버님에 대한 효성이 가장 뛰어났다』고 했다.
육 위원장은 『아버님이 담배를 무척 즐기셨는데 일정 때 궐련 구하기가 힘들자 잎담배를 썰어 궐련을 만들어 드리는 것은 이 딸의 임무였다』면서 그러면서도 조금도 고달파 하거나 쉬지를 않았다고 회상했다.
육 여사 동생의 남편 조태호씨는 『요 며칠전에도 육 여사가 여기저기서 모은 의복류를 불우 아동들에게 나눠주면서 새삼 육 여사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느꼈는데 육 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 죽은 것 같지 않다』고 울먹였다.
장덕진씨는 육 위원장에게 『아까 하오 5시쯤 신관빈소에 가서 잠시동안 문상객을 맞았는데 대부분이 일반 시민들이고 어린이들을 손에 이끌고 같이 와서 분향하며 흐느껴 우는 것을 봤다』면서 『영부인께서 얼마나 일반 시민들 속에 깊이 파고 들었었나를 새삼스레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흐느꼈다.
고 육영수 여사 빈소에 나온 사람들은 박 대통령과 육 여사의 결혼식은 동란중인 50년 12월 12일 대구시 대봉동에 있는 효성국민학교에서 올려졌다고 전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육군 중령으로 34세였고 갓 창설된 제9사단(백마사단) 참모장으로 있다가 결혼 후 한 달만에 대령으로 진급됐다. 육 여사는 당시 24세.
결혼식 주례는 대구시장이었던 허억씨(작고)가 섰고 경북지사 조재천씨(작고)와 모교인 대구사범 대구 동창회 등에서 화환을 보냈다.
하객은 같은 부대 군수참모였던 김재춘 씨(현 국회의원·당시 중령)와 왕학수씨(부산일보 사장) 김종면씨(서울신문사 감사) 김종필 총리 부인인 박영옥 여사(당시 미혼)등 가족친척과 전우·대구사범 동창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신랑 측 들러리는 대구사범 동창인 두룡규씨(대구시내 고교 근무)와 전우였던 최호씨(예비역 대령)였고, 신부 측에선 김재춘씨의 부인인 장봉희 여사(47)와 육 여사의 친동생인 육연수 여사가 섰다.
육 여사는 이종인 송재천씨(55·한국 인삼조합 연합회 전무이사)의 중매로 박 대통령과 만나게 됐다. 송씨는 당시 군인으로 박 대통령과 함께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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