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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 9시간도 허사로…슬픔에 잠겼던 서울대학병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총탄을 맞은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쾌유를 비는 국민의 기도 속에 서울대병원에서 9시간의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육 여사는 상오 10시32분 경찰「사이카」2대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0가3575호 검은색 「세단」에 실려 서울대병원 응급실 문 앞에 도착했다.
병원측은 즉각 수혈·지혈·산소 호흡 등 응급 처치를 했다.
상오 11시30분 중앙 수술장으로 옮겨져 심보성 신경외과 과장, 최길수 부과장 등 신경외과 「팀」의 집도로 「두부관통 총창」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이 계속되는 동안 수술장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으며 간간이 의사와 피를 운반하는 직원들만 바쁜 걸음으로 오갔다.
하오 4시20분 5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 수술장 옆 회복실로 옮겨져 계속 수혈을 받았으며 하오 5시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이 병원 서무과장실에 와 기자들에게 수술 내용과 육 여사의 용태가 「중태」라고 발표.
하오 6시부터 육 여사의 용태는 더욱 악화, 심한 호흡장애를 일으켰다. 간호원 김숙자양(23)에 의하면 수술은 곽일용 마취 과장에 의해 전신 마취, 심 과장의 집도아래 이루어졌으며 수술 후에도 20여명의 의료진이 회복실로 옮겨 계속 인공 호흡을 했었다.
육 여사의 운명 소식은 수술장 밖의 사람들에게 곧 알려지지 않았으나 하오 7시30쯤 수련 부장 이정균씨가 흰 장갑과 검은 보자기 「테이프」 등을 갖고 수술장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주치의 민헌기 박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나와 이를 지켜보던 기자들에게 운명을 직감케 했다.」
병원에서 육 여사의 운명이 알려진 것은 하오 8시쯤.
한심석 서울대 총장·김홍기 대학 병원장이 회복실에서 나와 원장실로 들어갔다. 이 때 기다리고 있던 조계종 총무 원장 손경산 스님이 김 병원장에게 육 여사의 용태를 묻자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나직이 말했다. 육 여사의 운명 시간은 정확히 7시. 병원에 입원한지 거의 6시간만에 운명한 것이다. 하오 8시4분 경호원 10여명이 들 것으로 육 여사의 유해를 회복실에서 통로를 통해 응급실 밖으로 옮겨 즉시 대기하고있던 검정색 「왜건」으로 청와대로 운구했다.
육 여사의 유해는 분홍색 「쉬트」로 덮여있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식을 끝내고 상오 11시10분쯤 전용 병실인 특301호실에 들러 의료진들에게 최선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깊숙히 넣은 채 계단을 올라갔다.
박 대통령은 병원을 떠나면서 집도했던 심보성 박사 등 의사들 및 간호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수고 많았소. 감사하오』라고 인사했다.
상오 11시30분쯤 큰 딸 근혜양이 병실에 도착, 울음을 터뜨렸고 하오 1시30분쯤 지만군과 근영양이 도착했다
낮 12시47분에는 태완선 부총리가, 12시50분에는 정일권 국회의장이, 하오 3시45분에는 민관식 문교 장관이, 하오 4시20분에는 김종필 총리가 다녀갔다.
육 여사의 운명소식이 전해지자 의사·간호원·입원 환자 등은 한결같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으며 수술을 맡았던 심 박사는 『생명을 구하지 못해 무어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오 9시30분쯤에는 서울대 일반 대학원 행정학과 2년 정진세군(25)이 특301호 앞 복도에 엎어져 『어머니! 어머니!』하며 통곡했고 71년 배화여고를 졸업했다는 이미연양(23·중앙대 가정관리과 2년)은 육 여사가 『졸업 때 축하 전보까지 보낼 정도로 자상한 선배였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병원을 찾아와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수술에는 피가 모두 60여「파인트」(1만9천2백cc)가 들어갔으며 이 피는 모두 AB형이었다. 피는 시내 각 혈액원과 청와대 직원 약 40여명의 헌혈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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