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바둑 보급 나선 김효정 프로기사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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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국프로기사회장에 취임한 김효정(34)프로2단의 휴대전화 연락처에는 중간번호가 ‘50’으로 시작되는 번호가 유난히 많았다. 군에서 보급하는 휴대전화의 고유번호다. 이유가 있다. 그는 올해로 6년째 군(軍) 바둑 보급 활동을 이끌고 있다.지난 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솔직히 바둑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잖아요. 대중화를 위해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군대를 떠올렸죠. 바둑을 배우고 싶어도 바빠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대라면 여가시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미모의 여성 기사들이 가면 반응이 더 좋을 거라고 예상했고요.”

김 회장은 쉽게 익히고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표준형(19줄)보다 금방 승부가 나는 9줄짜리 보급형 바둑판도 준비했다.예상은 적중했다. 사병 장교할 것 없이 바둑판 혹은 여성 기사 앞으로 모여들었다. ‘블루 오션’을 찾은 것이다. “바둑이 일종의 전략게임이거든요. 군과 잘 맞죠. 낯설어하던 장병들도 금새 빠져들어 ‘빵내기’ 바둑도 겨루곤 해요.”

이렇게 6년간 바둑 보급을 위해 전국의 부대를 찾아다녔다. “철원·사천·남양주·평택·진해 등 전국 안 가본 지역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현재는 전국 15개 부대가 고정적으로 강습을 듣고 있다. 각 부대마다 1명의 여성기사들이 전속으로 배정돼 주말마다 찾아가 4시간씩 가르친다.

김 회장의 예상이 적중한 것은 또 있었다. 미모의 여성기사 배윤진 3단이 강습활동 중 육군 ROTC 장교와 교제해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다.

김 회장이 바둑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오빠와 언니만 바둑을 가르치자 '왕따'가 되기 싫어 졸라서 배웠다고 한다. 오빠는 학업으로 관심을 돌렸지만 두 자매는 프로기사가 됐다. 언니인 김현정(3단)씨는 일본기원 소속으로 나고야에서 활동 중이다. 김 3단의 남편도 일본인 프로기사다. 10여년 전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모았던 일본만화 ‘고스트 바둑왕’에서 일본 바둑팀 단장을 맡은 구라타 아츠시의 실제 모델이 바로 김 회장의 형부다.

김 회장은 바둑의 대중화를 고심중이다.우선 ‘바둑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작정했다.그래서 직접 ‘펀펀 바둑’이라는 교습용 프로그램을 찍었다. '펀펀 바둑'은 유투브 같은 웹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김 회장은 “룰도 단순하고 스타크래프트처럼 유닛(Unit)마다 외워야할 특성도 없다"며 "바둑을 배우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위축된 한국 바둑이다. 천하무적으로 군림했던 한국 바둑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중국에게 연이어 무너지며 자존심을 구겼다.그 이유에 대해 김 회장은 ”국제대회 준우승자까지 군복무를 면제받았는데 2009년부터 ‘메달’ 획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게다가 올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종목 채택이 안 되면서 메달을 딸 기회 자체도 없어진 것이다. 통상적으로 바둑 기사의 전성기는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로 보는데 한창 기량이 향상될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다는 거다.원성진· 백홍석· 허영호 같은 한국 바둑의 간판급 기사들이 현재 군 복무중이다.김 회장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기여하는 것으로는 바둑도 다른 스포츠 못지 않다“며 ”특혜가 아니라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싶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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