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쫓아 허덕이는「날품 운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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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운전 날품팔이. 취업의 보장 없는 운전사의 양산이 일감을 기다리며 하루해를 보내는 날품팔이 운전사를 낳고 있다. 이들 날품팔이 운전사들은 대부분 하루 2천∼3천 원씩의 일당으로 2∼3일 정도의 단기 취업 밖에 할 수 없어 힘들여 운전 면허증을 얻고도 불안전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실정. 이 때문에 운전사들은 일자리 부족으로 고정 취업을 할 수 없는 운전 면허증 소지자에 대한 취업 알선과 권익 보호를 위한 당국의 배려가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운전 면허증 소지자는 6월 말 현재 모두 71만5백82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 가운데 취업 운전사는 28만여 명으로 3분의1 이상이 미 취업 상태에 있다.
「스페어」운전사로 불리는 이들 미 취업 운전사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대도시의 주차장, 정비 공장, 전세차 업체, 운전사 단골 식당 부근에 모여들고 있다
서울 시내의 경우 차량 관계 업체가 집중해 있는 중구 을지로5가, 무교동, 종로5가, 필동 건국대 앞, 안국동, 「을지로」입구 등에 하루 평균 4천명의 운전사들이 모여들어 노동 시장을 이루고 있다.
「스페어」운전사를 고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가용 차주. 이들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남아 드는 신진 운전사들을 단기간의 헌 값으로 부릴 수 있어 인건비가 절약되고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도 있기 때문에 즐겨 찾는다. 날품팔이 운전사들의 일당은 하루 2천∼3천 원, 잘해야 일주일 2일 일감을 얻는다 해도 한 달 수입이 고작 2만원을 넘지 못하는 셈이다.
「스페어」운전사 이형민씨(34·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475)에 따르면 10여 년간 일해 온 직장을 그만둔 후 그날그날 보다 대우 좋은 직장을 찾아 취직을 미루다 어느새 운전 날품팔이가 되고 말았다는 것.
이씨는「스페어」운전사 생활 2년만에 살고 있던 집마저 생활비로 팔아 버리고 지금은 4식구가 30만원 짜리 전세방에 들어 있다고 했다.
「스페어」운전사들은 차주나 고용주들이 운전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아 제대로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
그나마 「스페어」일자리마저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
해마다 전국에서 10만여 명씩 늘어가는 운전사수가 수요를 훨씬 웃돌고 있어 일감 구하기가 힘들게 된 것.
이 때문에 날품팔이 운전사의 취업에도 각종 직업알선「브로커」들이 끼어 들게 마련. 직업 알선 「브로커」들은 10~20여명씩의「스페어」운전사들을 항상 자기 주위에 확보, 무허가의 일자리 소개 행위마저 하고 있다.
자동차 매매 알선 업자나 취직「브로커」들이 「스페어」운전사에게서 받는 취업 알선료는 평균 1만5천 원. 심지어 한달 치 봉급을 가로채는 경우도 많다. 「스페어」운전사들은 언제 일감을 놓쳐 다시「브로커」들의 신세를 지게 될지 모르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무리한 줄 알면서도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
「스페어」운전사 유 모씨(33·마포구 아현동)는『벌이를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나선「스페어」운전사들이 때로는 본의 아니게 모처럼 배운 운전 기술을 늘리고 할 일이 없으니 도박이나 하기 예사』라고 말했다.
유씨는 또『「스페어」운전사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들에게 이용되거나 억울하게 희생이 되는 때도 많다』고 말하고 강도 살인범 이종대와 문도석을 태우고 갔다가 살해 된 최덕현씨(44)도 이 같은「케이스」의 희생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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