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장덕조(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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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루한 장마가 오락가락하고, 아내와 아들을 죽인 살인 강도의 어두운 화제가 아직 걷히지 않고 있는 오후 전화가 걸려왔다. 친지의 딸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기쁨에 찬 목소리다.
문득 남편의 손에 죽은 그 살인범의 아내도 이렇게 기쁨에 찬 목소리로 일찌기 자기결혼을 친한 사람들에게 알렸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살인강도의 가족이라 해서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내 손으로 죽인다』하는 남편의 선언과 함께 가슴에 총을 맞았을 때의 광경도 떠오른다.
범죄자의 가족이 소외당한다는 것은 이사회의 통념이다. 그 통념 때문에 젊은 한 여인은 죽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또한 한개 통념의 권화 같은 것이 아닐까.
여자는 한번 결혼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나가야 한다. 결혼을 해소해서는 안된다. 의견의 차가 생기면 남편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이 같은 통념에 얽매여 이 땅의 많은 여인들은 한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통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자신의 의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다른 사람들의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남의 이목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념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고 관철해 나가기란 특수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끝내는 갖가지 이유를 붙여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화하기도 하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 같은 동화는 세상은 무서운 곳,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선입관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 땅의 서민들은 남의 눈치를 먼저 살피게되었고 사회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는 지혜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단이 나타났다. 사회 한 구석에서 소리도 없이 살아가야 할 서민의 한사람이 세상을 소란하게 한 것이다. 총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빼앗았다.
그는 쫓기고 궁지에 몰렸으며 가족을 앞에 놓고 경찰관과 대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스컴」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렸고 사회의 여론은『미중유의 흉악범』『짐승 같은 살인마』『죽여야한다』의 일색으로 돌아갔다.
범인의 곁에 놓인「라디오」도 이 같은 대중의 부르짖음을 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단 한사람의 동석자도 없었다. 혹 그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 마음속으로 동정을 품는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감 그 같은 눈치는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표시를 하는 즉시 그 사람은 뭇매를 맞았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케네디」미국대통령을 저격한 피의자 가족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금이 쏟아져 들어왔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 그리고 갈수록 미국이란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 생각했다.
미국에는 수많은 인종들이 각각 특이한 사고방식과 이질적인 생활양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잠시 거리를 걸어보아도 그렇다. 머리를 잔등까지 늘어뜨린 남자, 배꼽을 내 놓고 활보하는 여자, 자기 나라 고유의상을 그대로 입고 돌아다니는 남방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호기의 눈길을 보내거나 따돌리고 쑤군거리지 않는다.
「히피」에게도, 범죄자에게 공개적인 동정자가 나타난다. 그 나라에는 입국의 이념이 있어 이 이념에 공명하고 이를 준수하기만 하면 누구나 위화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 생활양식이나 사고의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나라는「유럽」쪽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웃과 다른 일반통념에 어긋나는 사고를 하거나 행동을 하면 곧 지탄을 받는다.
그리고 일단 이분자란 지탄을 받기만 하면 다음에는 한 사람의 동정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매스컴」의 논조도 그렇다. 한 사람이 외치면 뒤따라 일색이 된다.
통념이란 무엇인가. 존중해야할 것인가, 묵살해야할 것인가. 여자는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출산해야한다는 상식에 따라 남편을 맞았고 세간적인 논리를 좇아 남편에게 순종해 왔고 사회통념의 희생이 되어 목숨을 잃은 한국의 한 젊은 여인을 애달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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