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제39화 범죄감식(3)|<제자 김구현>김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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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백교 교주 두부>
범죄감식은 범죄행위와 수사활동 틈바구니에서 가능한 모든 증거를 동원하여 범죄사실을 입증, 사건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재판상의 유력한 실증이나 근거를 제공하여 인권옹호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범죄감식이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으며 이른바 과학수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례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총본산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89의11에 자리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다.
그곳 1층 시체해부실에는 유리병 속에 든 사람머리가 진열되어있다. 사지와 몸통이 붙어있지 않은 머리는 보통사람보다 훨씬 크며 뒤통수에 아무렇게나 늘어 뜨러진 긴 머리카락, 반쯤 감은 눈이며 코와 턱부분이 뜯겨져 없어 더욱 귀기가 감돈다.
범죄형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백백교 교주 전룡해(일부사전에는 전해룡으로 되어있음)의 두부가 10%「포르말린」용액에 잠겨 벌써 37년 동안 표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50살이 넘은 분들 가운데 혹 백백교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일제하에서 그 사건만큼 온통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우도 드물었던 것 같다.
1937년 당시 필자는 겨우 12살의 소년에 지나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전 세계를 전율시킨 살인마집단』이니『흉포의 극, 참학의 절, 마도 백백교죄상』이라고 대서특필한 당시의 신문을 읽은 기억이 난다. 뒤에 경찰에 투신한 후 범죄감식분야에 몸바치면서 각별히 당시의 기록을 열람할 기회가 있었고 선배들로부터 수사심화를 전해들어 백백교 사건을 파악할 수 있어 감식얘기의 벽두에서 백백교 사건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러냐면 순수한 의미에서 일반범죄에 감식이 적용되기는 백백교 사건이 다른 어떤 사건보다 관심이 컸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37년4월13일 당시 경기도 경찰부는 유사종교집단 백백교의 죄악상을 발표했다.
당시의 경찰발표로 교주 전룡해와 간부들은 남녀신도 5백 여명(추정)을 망치로 때려죽이거나 목졸라 죽여 암장했으며 신도들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고 부녀자 능욕을 밥먹듯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발굴된 시체만도 3백14구였으며 전룡해는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고 간부급 신도 2백 여명이 경찰에 잡혔다.
다 알다시피 백백교란 인천교와 함께 백도교의 2대분파 중의 하나이다. 평북 영변군 연산면 화현리 출신의 농사꾼 전정운은 금강산에서 3년간 수도한 끝에 천지신령의 도를 터득했다면서 1900년 당시 30살의 나이로 함남 문천군 운림면 마한리에서 포교에 나섰다. 전은『명치 37년(1904년) 6월에 큰 천재지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된다.
나를 따르면 동해의 신선의 땅(영주)에 피난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병식재와 불로장수를 교지로 내세워 우매한 서민, 특히 부녀자층에 파고들었다. 당시 혼란했던 사회상과 경제적 궁핍, 불안정 속에서 불길처럼 일었던 유사 종교가 한결같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민심을 현혹시켰던 것이다.
차차 신도가 늘어나자 전은 1912년 강원도 금화군 근동면 수태리 오성산으로 본거지를 옮겨「백도교」라 칭하고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여 포교에 나서니 3년 뒤에는 그를 따르는 신도가 1만 여명을 헤아리게 됐다. 전은 신도들이 헌납한 금품으로 호사로운 생활을 계속하다가 1917년 본거지를 경기도 가호군 북면 적목리 황학산으로 옮겼으나 2년 뒤에 죽고 말았다.
전은 용주·용해·용석 등 세 아들을 낳은 본부인 우씨 외에도 60명의 미첩을 거느려 제왕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전이 죽은 뒤 둘째 아들 용해는 차병간과 손을 잡아 우광현을 2세 교주로 내세워 가평 본거지를 차지하여 1923년7월「백백교」로 이름을 갈아 분파했고 맏아들 용주는 그해 5월 이희룡 등과 함께 경성본부(당시 경성부도화정 156)에「인천교」를 창립했다.
전룡해 일당은 겉으로는 그럴듯한 15계명을 내세웠으니 8가지「하라는 것」(경천부·예곤모·충군신·엄사부·효부자·화형제·휼처자·애린리)과 7가지「하지 말라」(물간음·물음해·물살명·물위도·물질투·물쟁투·물배은)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불·선을 종합했다며 교주의 결백한 심령이 퇴폐한 세상 인심을 맑게 하고 현 사회를 교화 선도하여 다함께 광명세계를 실현하자는 종지(일인지백 장욕백지 어천하야)를 앞세워 전해룡 자신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믿게 했다.
그러나 전룡해 자신은 신도들의 재물을 수탈하고 부녀자겁탈을 일삼으면서 맹목적인 복종과 조직의 힘으로 신도들을 다스렸다. 교주아래에 대법사와 도유사, 공명사, 지부장, 사서, 강인 등 간부급이 수족처럼 움직였으며 몇 사람의 측근 외에는 자기 얼굴을 알 수 없게 하여 자신은 항상 신비의「베일」에 가리워 있도록 했다.
또한 자신은 커다란 독수리로 신도들은 거북으로 형상화하여 거북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무가지를 독수리가 물고있는 그림을 신도들에게 보여주면서 철저히 비밀을 지킬 것을 엄명했다. 즉 독수리인 자기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면 나무가지가 떨어져 신도들이 한꺼번에 몰살할 것이며 거북이가 입을 열면 역시 떨어져 혼자 죽는다고 설교하여 백백교의 비위가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입조심을 시켰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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