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위기 경고하던 루비니 "F5 외환·금융위기 가능성 낮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흥국 외환위기가 코앞에 다가온 것일까. 지난달 골드먼삭스·JP모건·모건스탠리·UBS 등 서방 금융그룹들은 “신흥국 1~3곳이 2014년 안에 1990년대 아시아 위기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경고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적중한 듯하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달러와 견줘 25.8%(최근 6개월 기준) 추락해서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외환위기 기준과 부합한다.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미국 달러와 견줘 ‘단기간 20% 이상 떨어지면’ 외환위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위기의 전령사’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뜻밖의 전망을 내놓았다. 3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루비니는 “F5(취약한 5개국: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터키·남아공)가 외환·금융위기에 빠질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그는 틈만 나면 위기를 경고하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루비니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문제의 나라들이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고 (90년대와 견줘) 한결 두터운 갑옷(외환보유액)을 두르고 있다”며 “달러 자금을 들여와 자국 부동산시장 등에 투자한 규모도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90년대 태국·인도네시아 등이 외환위기에 빠지도록 한 대표적 요인들이었다.

 다만 루비니는 “신흥국들이 통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며 “이들 나라의 실물경제가 2~3년 동안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주 인도·터키 등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로이터통신은 “곧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들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다는 게 월가의 예상”이라고 이날 전했다. 정작 기준금리 인상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당사국 중앙은행 총재마저 반신반의하고 있다.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이 위기의 방파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만도 테탕고 필리핀은행 총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금리 인상은 약보다 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니 경고처럼 금리 인상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뿐 통화 가치 안정에 효과가 없어서다.

실제 인도·터키 등의 금리 인상 직후에도 이들 나라의 통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단지 하락폭이 좀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위기의 먹구름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는 와중에 진단과 처방에 대한 의견 차마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강남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