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바마 한·일 방문은 3각협력 되살릴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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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교는 일정(日程)의 예술이기도 하다. 한 국가 정상의 행선지를 보면 외교정책의 지향점과 우선순위가 보인다. 24시간을 쪼개 쓰는 국가 정상의 해외 순방 일정의 함의는 그만큼 크다. 극단적 예이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동남아 순방을 취소하면서 ‘아시아 회귀’ 정책과 미국의 리더십은 큰 금이 갔다. 미 연방정부의 일시 폐쇄가 오바마의 발목을 잡았지만 동남아는 미국의 신고립주의로 받아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시 순방 취소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 올 4월 아시아를 찾는다. 최종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당초 일본과 필리핀, 말레이시아가 순방국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한국은 지난해 말 외교채널을 통해 오바마의 방문을 요청했고, 미국은 현재 최종 방문국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오바마의 방한이나 한·미 정상회담은 올가을 중국 개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4월 방한은 양국 모두에 이익이다.

 일본이 전방위 영토·과거사 도발에 나선 마당에 오바마가 일본만 들렀을 경우 미국의 일본 편들기라는 인상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미국 공공외교와 동맹 관리의 실패다. 동맹은 신뢰와 국민감정으로 지탱되는 생물체이기도 하다. 일본이 한국을 자극할 사안은 수두룩하다. 2월 ‘다케시마의 날’ 행사와 3월 교과서 검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서 오바마의 한국 건너뛰기(passing)는 한국 때리기(bashing)에 다름 아니다. 오바마의 한·일 순방은 최악의 한·일 관계를 수습하고 한·미·일 3각 협력을 복원할 기회일 수 있다. 일본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한·미 양자 간 현안도 쌓여 있다. 북한의 불확실한 내부 정세 평가와 관리, 핵·미사일 개발 억지는 중·일, 한·일 간 대치만큼 중요한 동북아의 핵심 이슈다. 이와 맞물린 미군 전시작전권의 한국군 전환 연기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오바마가 순방국에서 한국을 빠뜨리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오바마의 방한 여부는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미국 역할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