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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터진 일본 야당을 어찌할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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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특파원

“오승환이라고 새로 왔잖아요. 한신 타이거스에, 근데 나라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한신의 전 마무리투수인) 후지카와 규지의 등번호 22번을 준 건 너무 성급했어요.”

 집 근처의 동네 병원에 들렀더니 옆자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다.

 열성 야구팬인 듯한 두 사람의 대화 중 한 사람은 “잘한다고 해도 얼마나 잘하겠어요. 나라가 나라니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다른 사람이 “공을 보니까 엄청나던데. 듣던 대로 최고야”라고 말해도 상대방은 오승환 선수가 한국 출신이란 사실만으로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었다.

 한국에 원한이 있거나 뼛속까지 우익이 아니라면, 이 역시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이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아베 독주’가 이어지는 일본에서 이 같은 혐한(嫌韓) 현장을 마주치는 건 매일매일의 일상이 됐다. 문제는 이런 아베의 일본이 향후 상당 기간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아베와 자민당의 견제 세력이 태동하기조차 힘들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진다. 특히 지난주 일본 야당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1. 지난달 31일 모미이 가쓰토 NHK 신임 회장이 중의원에 출석했다. 취임회견에서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는 망언을 쏟아내 일본사회를 경악시킨 인물이다. 그는 특파원 생활 내내 지켜본 일본 지도층 인사 중 가장 어리버리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아베에게 코드를 맞추려 눈치도 체면도 없이 출근 첫날부터 망언을 쏟아냈을까. 하지만 이 ‘어리버리 돌격대’를 추궁한 제1 야당 민주당의 중의원 하라구치 가즈히로가 더 가관이었다. “사적으로 했던 위안부 발언 자체에 대해선 묻지 않겠다”고 먼저 선을 긋더니 정말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하긴 발언 도중 ‘함께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그에게 뭘 기대하겠는가. 가치관과 이념이 뒤죽박죽인 섞어찌개 정당 민주당의 현주소였다.

 #2. 다음은 지난주 일본의 정당 대표들이 쏟아낸 말말말, 무엇이 야당 의 발언일까.

 ①“올해는 아베 총리와 더 깊게 대화하고 싶습니다. 집단적 자위권이나 헌법 개정은 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②“헌법 개정과 집단 자위권에 대해선 흉금을 열고 크게 한번 논의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③“도덕 과목을 따로 학교에서 가르치겠다는 것은 국가가 특정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정부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믿기 어렵지만 3번이 연립여당 공명당 대표의 발언이고, 1번과 2번은 야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무늬만 야당인 ‘모두의 당’과 일본유신회는 연일 아베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아베가 왜 연일 “당신들은 이래서 안 돼”라고 야당을 무시하면서 자기 입맛대로 일본이란 나라를 요리할 수 있는지 무기력한 야당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

서승욱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