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교과서의 단일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교부가 73년부터 착수한 모든 중학교용 교과서의 단일화 작업은 결국 새해부터 중학교의 전과목에 걸치는 교과서의 사실상 국정화를 필지케 할 것으로 보인다.
종래부터 국정교과서를 쓰고 있던 국어·반공 도덕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국사·영어는 지난해에 이미 단일화되었으며, 올해엔 수학·과학·사회과 지리부도·체육 등이 단일화되어 내년부터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미술·음악·가정 등 교과서도 결국은 시간의 문제요, 머지 않아 전 학과목은 각기 한가지씩의 교과서로 통일될 것이 틀림없다.
문교당국은 교과서가 단일화된다고 해서 검인정제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는 모양이나, 단 하나의 교과서 이외에는 어떤 교과서도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서 그 검인정의 주체도 문교부가 될 것이고 보면 그럴 경우,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하는 것은 오직 명목상의 차이일 뿐, 실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교과서를 단일화하겠다는 문교정책의 결정은 이미 확고한 것이고,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명분과 동기가 있는 것이라면, 문교부는 의당 이러한 정책결정이 가져올 모든 결과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예에 비추어 보더라도 문교정책의 결정은 일단 정부당국자의 뜻이 선 다음에는 식자의 여론이나 시비에 아랑곳없이 그것은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강』을 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학 교과서의 단일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조만 간에 중학교의 전과목 교과서가 오직 문교부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로 통일된다면 앞으로 그러한 교과서정책이 가져다 줄 폐단에 대해서는 문교부가 책임지고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점을 깊이 명심하고 문교부는 앞으로의 편찬과정에서 신중을 기하고 그 소산이 과거의 어느 검인정 교과서보다도 훨씬 훌륭한 것이 되도록 지혜와 성의를 다 하여야 될 것이다.
교과서의 「단일화」로써 기대할 수 있는 용지의 절약, 교과서 채택을 에워싼 잡음의 불식, 국적 있는 교육의 실천 등 장점들은 물론 그것대로 인정한다 할 수 있더라도, 교과서의 「단일화」가 갖는 위험성만은 철저히 경계해야만 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단일화되면 그것이 검인정이건 국정이건 궁극에 있어 그의 저자가 역시 사람이고 보면, 한 사람, 또는 소수인이 갖는 주견이나 편견을 벗어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오늘날처럼 과학·지식의 내용이 급격하게 쇄신되어 가는 시대에 있어 고정화의 경향을 갖는 교과서체계가 이처럼 유동적인 시대·사회와의 보조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뿐더러 우리 나라 학교교실의 분위기는 더욱이나 「다른 생각」·「다른 견해」의 존재가능성에 대해서 폐쇄적인 권위주의적 풍토를 조성하기 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교과서의 단일화를 통해서 더욱 촉진될 우려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교과서 단일화 작업에 붙이고 싶은 충언은 부디 이러한 위험을 십분 자각하고 그 편찬과정에서 교사와 저자들의 창의성을 살리며, 교과서의 서술은 토론을 유도할 수 있는 개방적인 방식을 채용하라는 얘기다. 다른 기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이 점만은 특히 강조되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