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로 승부 … 위기의 정유업계 덩치 키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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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내 정유업계가 실적 부진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올해 상황이 더 안 좋을 것”이란 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정유업체들의 실적은 최근 1년 새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최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은 매출이 8조445억원이었지만 영업손실이 526억원에 달해 적자로 돌아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해진 정제마진 탓이다. 정유업체들은 원유를 들여와 이를 정제해 휘발유·등유·경유로 가공해 판매한다. 정제마진은 원유 1배럴을 정제할 때 나오는 이익의 평균치로 정유업체 손익의 지표가 된다.

 지난해 초만 해도 정유업계의 정제마진은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2일 동양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정유업체들의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0.7달러였다. 그러나 7.7달러(2분기)→8.7달러(3분기)→6.2달러(4분기)로 시간이 갈수록 하락했다. 특히 급전직하한 휘발유 정제마진이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국내 정유업계는 가공한 제품의 60%를 동남아 등 해외로 수출한다. 그런데 가장 큰 고객인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통화가치 하락을 이유로 휘발유에 대한 보조금을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면 휘발유 수요가 감소한다. 수요가 줄 경우 정유업체들이 서로 판매가를 낮추기 때문에 정제마진 역시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휘발유 정제마진은 2013년 1분기 20.8달러에서 4분기엔 8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정제마진의 하락은 국내 정유업계에 쓰나미로 돌아왔다. 에쓰오일은 지난 1년간 31조1585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정유사업에서만 3219억원의 적자를 냈다. 업계 3위인 에쓰오일의 정유업이 큰 폭의 적자를 내자 업계에선 ‘남의 일만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4일 실적을 발표하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분기 소폭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칠 전망이다.

 2위인 GS칼텍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4분기 실적 추정치는 11조7920억원, 영업이익은 130억원이다. 그러나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사업은 10조2650억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530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동양증권은 “올해도 원유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일본과 호주 정유업체의 설비가 폐쇄되는 하반기에나 복합 정제마진이 배럴당 8~9달러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국내 정유업체들은 ‘세 불리기’로 불황 타개에 나서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안방 시장에서 업계 4위 현대오일뱅크와 ‘주유소 깃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지난해 말 GS가 LG와 함께 인수한 STX에너지가 촉매가 됐다. STX에너지가 자체 보유한 주유소는 50여 개. 거래처는 400여 개 주유소인데, 이들 대부분이 현대오일뱅크와 거래를 해왔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M&A)으로 경기·충청권에 몰려 있던 현대오일뱅크 거래처들이 GS칼텍스로 넘어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최근 호주 최대 석유 유통업체인 유나이티드페트롤리엄(UP) 지분 30%를 인수하는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약 2조원대의 매출을 올린 UP는 호주 전역에 300여 개의 주유소를 보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연간 5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가져다주는 효자사업인 석유개발사업(E&A) M&A에 뛰어들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2011년에 브라질 원유 생산광구를 약 2조6000억원에 매각한 자금을 바탕으로 올해 네 번째 M&A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석유개발 사업의 비중을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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