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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상의 남녀차별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에 있은 친권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민법상의 남녀 차별문제가 재론되고 있다. 이미 신민법 제정당시부터 현행 민법이 남녀평등의 헌법이념에 위배된다고 하여 논의되었었는데 근자에 와서 61개 여성단체가 범 여성가족법 개정 촉진회를 만들어 가족법 개정을 추진키에 이른 것이다.
이들이 개정을 주장하는 조항은 호주제·친족범위·동성동본 혼인금지·부부별산제·법정재산 상속제·친권행사에 있어서의 부 우선·협의이혼제도·이혼 배우자의 재산 분배 등이다.
민법제정 당시 국회의 다수의원들은 이 조항들이 형식적으로 본다면 불평등일지 모르나 우리의 순풍 미속을 살리고 여성을 보호하는 면에서 실질적 평등에 가깝다고 하여 입법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호주상속이나 재산상속이 인정되지 않았고, 구 관습법상으로는 칠거지악까지 있었기 때문에 신 민법은 획기적인 여성보호조항으로 믿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제정 후 16년이 경과된 지금 다시 개정이 운위되고 있는 것은 그 동안에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향상된 때문이라 하겠다.
사실이지, 호주제도라든가 동성동본 금혼 제도 등은 현실적으로 별 의의가 없다. 호주가 호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호주제도의 존부 자체를 논해야지 여자가 호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자체는 필요 없는 요구로 볼 수밖에 없다. 동성동본 금혼 원칙도 자녀만 출생하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부부 재산문제에 있어서의 불평등은 이제 현실적으로 많은 논의를 일으키고 있다. 부부별산제 하에서 누구에게 귀속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재산을 부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규정은 사회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측은 이 조항이 불평등이라 하여 소속이 불분명한 재산은 공유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가사 대리로 인한 채무도 부부의 공동채무로 간주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법정재산 상속에 있어서 출가한 여자에게 남자의 4분의 1을 주는 것과 출가하지 않은 여자에게 남자의 2분의 1 밖에 안주는 것은 불평등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출가외인이라고 하여 출가한 여자에게 재산상속을 인정하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호주의 재산은 가의 재산이요, 가의 재산은 남계혈족에게 상속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가 아직도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가독 상속이냐 개인재산 분배냐의 개념규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가 본위의 민법체제를 유지하느냐 개인본위의 민법체제로 변경하느냐는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전통사상 하에서는 가 본위제도가 지배하였으며 시어머니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본위의 가정에서는 시어머니의 권위가 저상되고, 노인문제라든가 자녀교육문제, 또는 이혼문제 등 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개인본위 적인 입장에서는 협의이혼 제도가 당연한 결론이나 경제적 약자인 처를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이혼후의 재산 분여 제도의 채택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권리의 평등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의무의 평등도 주장해야 한다. 민법상의 부양의무라든가 생계비 부담의 의무는 부에게 있는데 처가 가정부나 데리고 계나 하면서 빈둥빈둥 놀고있으면서 동권을 주장한다면 여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처가 가사노동을 하면서 또는 맞벌이를 하면서 동권을 주장한다면 이는 수긍될 수도 있다. 문제는 가정의 평화라든가 부부의 화합이란, 권리의 평등주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상호의 양보와 희생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법의 남녀평등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법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남녀동권에 관한 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나 아직 주의 3분의 2가 이를 비준하지 않아 헌법개정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남녀의 동권을 추구하기 위하여 직업전선에 뛰어나간 미국의 여성 해방론자가 과연 한국의 가정 여성보다 더 행복한 것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간통쌍벌의 형법개정이 과연 여성에게 보다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는 가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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