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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중국 읽기] 구걸은 부끄러워도 몸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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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말이 있다. 무딘 붓이 총명함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책을 보고 며칠 지나면 알갱이는 흩어지고 잔상(殘像)만 남는다. 그래서 몇 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제2화> “구걸은 부끄러워도 몸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笑貧不笑娼)”
『정글만리』 (2013년 7월, 조정래 지음, 해냄)

2013년의 화제작이다. 출간 다섯 달 만에 100만 권 이상이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논란의 책이기도 하다. 중국 전문가들은 대개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전체 3권 중 제1권을 보다가 책장을 덮었다는 이가 많다. 반면 평소 중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일반인들은 후한 점수를 준다. 조정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보통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궁금증을 마음대로 해석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중국은 언제나 반대되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살아 있는 생명체여서 그 모습과 내용이 늘 변한다. 중국을 읽는 독자 입장에선 섣부른 결론을 취하려 하지 않는 게 한 방법이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강을 건너는(摸着石頭過河)’ 심정으로 신중하게 중국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글만리 속의 ‘느낌’ 주는 대목을 공유하고자 한다.

유상철 전문기자

☞ “인구 5천만의 한국이 호수라면, 14억의 중국은 망망대해” (1권 16쪽)

☞ “중국 사람들은 속 깊기가 삼천 척 바닷속이요, 수만 리 구름 속이었다. 으레 상담(商談)의 자리를 벌여놓고 그들은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이쪽의 관상을 보는 것이었다” (1권 61쪽)

☞ “중국 특유의 꽌시(關係)란 ‘연줄·뒷배·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지연·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1권 61~62쪽)

☞ “중국인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그들이 먼저 음식 대접을 제안하는 것은 그 관계의 성공을 의미했다. 거기다가 음식도 술도 최고로 하겠다는 것은 최대 호의의 표현이었다” (1권 77쪽) (촌평: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급하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행동한다. 그 기회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 “(중국의 매연은) 3대 재료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특제 매연이예요. 자동차 배기가스, 초고층 빌딩들 건축 현장에서 일어나는 먼지, 그리고 도시 주변의 공장들이 뿜어대는 석탄 연기의 혼합품입니다” (1권 89쪽)

☞ “중국의 3대 상징이 있는데, 형상으로 용, 색깔로 빨강, 꽃으로는 모란입니다” (1권 91쪽)

☞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사회를 운영해 가는 중국식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라 문제 삼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 없이 세상은 조용하다” (1권 100~101쪽) (촌평: 중국 사회의 작동기제를 설명하는 기막힌 이 말은 사실 사람 사는 모든 사회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 “중국의 3독(毒)이 담배·여자·술이라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의 가래는 유난스러웠다. 햇빛을 받아 윤기까지 내고 있는 그 가래는 ‘중국은 영원히 안돼!’ 하는 멸시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1권 143쪽)

☞ “세상은 일찍부터 가르쳐오고 있었다. ‘구걸은 부끄러워도 몸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笑貧不笑娼)’고” (1권 164쪽)

☞ “남자는 황하 이북 남자를 첫손에 꼽았고, 여자는 양자강 이남의 여자를 으뜸으로 친다고 했다. 북방 남자들은 골격이 크고 기운이 세며 기질이 억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방 여자들은 미모가 빼어나고 몸이 낭창거릴 만큼 날씬하면서 애교가 살살 녹는다고 했다” (1권 197쪽)

☞ “중국에서 손님 접대를 최고로 하는 3대 조건이 있었다. 최고급 식당에서, 최고급 음식을, 최고급 술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1권 230쪽)

☞ “중국에서는 절대 입에 올려서는 3대 금기가 있었다. 첫째 마오쩌둥에 대한 험담, 둘째 공산당에 대한 비판, 셋째 대만독립에 대한 지지.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젯거리들도 눈치껏 피해야 하는 지뢰였다” (1권 232쪽)

☞ “북풍이 불어야 기러기가 오고, 돌을 던져야 파문이 인다는 중국 속담 알아요?” (1권235쪽)

☞ “프랑스제 꼬냑은 중국 상류층에서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중국 술들에 비해 가짜가 적고, 자신의 체면과 신분을 과시하기에 좋았던 것이다” (1권 273쪽)

☞ “(중국의) 역사를 알게 되면 그들을 이해하는 길이 생기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더 깊은 것을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를 해결하다 보면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1권 282쪽)

☞ “한 번 거래를 튼 사람을 놓쳐서는 안된다. 고객 명단은 24시간 속주머니 속에 있어야 한다. 고객의 생일은 물론이고 그의 부인의 생일과 결혼기념일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부탁이라도 들어주었으면 반드시 인사를 차려야 한다” (1권 287쪽) (촌평: 중국에서 공짜는 없다)

☞ “당원의 기본 자격이 뭔지 알아? 인물, 실력, 언변이 3대 요건이야” (1권 324쪽)

☞ “중국의 문화전반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즉 형용사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크다, 넓다, 많다” (1권 329쪽)

☞ “아무리 똑똑한 년도 이쁜 년 못 당하고, 아무리 이쁜 년도 젊은 년 못 당한다” (2권19~20쪽)

☞ “중국 사람들이 평생 기를 써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 땅이 넓어 샅샅이 다 돌아볼 수 없는 것, 사람이 많아 일일이 다 만나볼 수 없는 것, 음식 종류가 많아 하나하나 다 맛볼 수 없는 것” (2권 26쪽)

☞ “중국에 세 가지 바보가 있다고 했다. 공안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 공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 나만은 공안에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 그래서 중국에서 가장 안전하게 사는 방법은 공안에게 걸릴 언행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2권 66~67쪽) (촌평: 한국이 중국에 가장 약한 게 바로 이 정보 보안에 대한 불감증이다)

☞ “중국인의 3대 상술이 있었다. 외상은 주지 말고, 외상을 했으면 떼먹어라. 마누라는 빌려줘도, 돈은 빌려주지 마라. 하루에 100원씩을 벌기로 했는데 90원 밖에 못 벌었으면 한 끼를 굶어라” (2권 86쪽)

☞ “책을 읽고 또 읽어라. 학교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부족을 책을 읽어서 채워야 한다. 책이 가장 좋은 스승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만이 세상사를 통달할 수 있다” (2권 88쪽)

☞ “중국에서는 여자에 대한 보복이 전혀 없었다. 숭녀공처(崇女恭妻)라는 사회적 가치관 때문이었다. ‘여자를 받들고 아내를 섬겨야 한다’는 뜻이 숭녀공처였다. 그 가치관에 따라 남자가 음식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것이 중국의 일반적 세태였다” (2권 102쪽)

☞ “어느 누군가가 말하기를 ‘나그네는 쉬어 간 그늘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2권 154쪽)

☞ “중국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고 세 번 놀랐다고 하잖아요. 6.25로 다 잿더미 돼버린 속에서 경제발전 일으킨 것, IMF 사태 때 완전히 망해버린 나라인줄 알았는데 금 모으기 하며 다시 일어난 것, 인구는 적은데 세계적으로 한류를 일으키고 운동도 잘하는 것” (2권 169쪽)

☞ “옛날에 목이 달아나고 싶으면 세 번 진언하라는 말이 있었다…기업의 오너도 직언의 대상이 아니었고, 충고의 대상도 아니었고, 토론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적 절대성과 제왕적 권력을 구사하기를 원했다” (2권 219쪽) (촌평: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 잘 새겨들어야 할 듯)

☞”차를 아랫사람 시키지 않고 직접 우려내고, 차 대접을 하는 것은 손님을 귀하고 정중하게 맞는다는 중국식 예법이었다” (2권 233쪽)

☞ “고급관리들은 자기네 단골식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과 약속을 할 때 이쪽에서 먼저 장소를 정해버리는 것은 중국사람들의 몐쯔를 깎는 일을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2권 308쪽) (촌평: 중국과 거래할 때는 항상 상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려 노력하는 게 좋다)

☞ “’정년퇴직’이라는 것은 직장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그것은 조직과의 단절이고, 사회와의 격리이며 인간으로서의 퇴물 선언이었다. 그런 것들은 남자로서 거세당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듯 퇴직을 앞둔 월급쟁이들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허탈감과 허망함과 공허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2권 372쪽)

☞ “100살 산 사람도 죽기 싫어하더라고 퇴직이 70이고, 80으로 연장된다고 아쉽지 않겠소? 다 사람의 욕심 때문에 그런 맘이 드는 거지” (2권 373쪽)

☞ “중국의 과거는 시안에 있고, 중국의 현재는 베이징에 있고, 중국의 미래는 상하이에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2권 379쪽)

☞ “직장생활이란 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제각기 다른 역에서 내려 뿔뿔이 흩어져 가는 열차놀이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2권 379~380쪽)

☞ “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2권 381쪽)

☞ “중국 여자들이 제일 듣고 싶어하는 말은 ‘돈 많이 버세요’ ‘부자 되세요’ ‘부자 될 상이예요’ 이런 말이오. 그 다음 두 번째가 ‘예쁘다’ ‘아름답다’ ‘매력적이다’ 뭐 그런거요. 중국에서는 세계 공통이 안 통한다 그거요” (3권 14쪽) (촌평: 중국 남성들은 까오(高, 키가 크다)→푸(富, 부티 난다)→솨이(帥, 잘 생겼다) 순으로, 중국 여성들은 바이(白, 피부가 희고 곱다)→푸(富, 부티 난다)→메이(美, 아름답다) 순으로 듣고 싶어 한다네요)

☞ “정치가는 야심이 있어야 하고 상인은 양심이 없어야 한다” (3권 115쪽)

☞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에 가면 꼭 빼먹지 않고 들리는 필수 코스가 있어요…이화여자대학교예요…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梨花’는 ‘돈이 벌리다’ ‘돈이 불어나다’라는 뜻의 ‘利發’와 그 발음이 너무나 흡사해서 중국 사람들은 배꽃을 ‘돈꽃’ ‘부자되는 꽃’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3권 141쪽) (촌평: 중국을 상대로 어떻게 장사를 할지에 대한 좋은 예)

☞ “중국에는 ‘가짜도 많으면 진짜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진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 모방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진짜 기술 개발에 도달한 것이 꽤나 많습니다” (3권 185쪽)

☞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나 일본의 주재원들은 한국 주재원들과는 정반대로 중국어를 전해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중국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중국사람들과 정을 나눌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3권 191쪽)

☞ “차는 깊은 명상에 잠기며 혼자 마시는 맛이 으뜸이라고 했다. 그 다음이 서로 말이 필요 없이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벗과 마시는 거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차 맛은 떨어진다고 했다” (3권 253쪽)

☞ ”중국 비즈니스의 최대 무기는 자유로운 중국어 구사라고 강조했었소. 그 다음 중요한 무기가 중국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구해 읽고, 그것들을 옆에 두고 수시로 들춰보는 것이오” (3권 277쪽) (촌평: 중국어는 어차피 외국어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하려고 애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 “나라가 우리를 이렇게 잘 살게 해주었으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면 더 잘 살게 해줄 것이다. 이런 믿음은 누구한테서나 확인할 수 있소. 그러니까 절대 다수의 서민들은 선거의 자유라는 것에 거의 관심이 없고, 서양 언론들이 기대해 마지 않는 민주화 투쟁이라는 요원할 뿐이오. 그러니 소수 지식인들이 벌이는 민주화 투쟁은 14억의 바다 위에 피어났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물거품일 뿐이오. 그들은 너무 빨리 가고, 인민들은 너무 느리고 그렇소” (3권 381~382쪽)

유상철 중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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