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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개인이 나선 소송은 패소 … 주정부가 총대 멘 뒤 판도 변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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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소송 관련 판례가 가장 많이 축적된 나라는 미국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담배 소송엔 세 번의 물결이 출렁였다. 첫 번째 물결은 1954년에 시작됐다가 73년에 썰물처럼 사라졌다. 주로 폐암ㆍ후두암에 걸린 흡연자들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하지만 담배 회사들이 흡연의 잠재적인 해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대지 못해 모두 원고 패소로 끝났다.

두 번째 물결은 1983년에 시작해 92년에 종료됐다. 1954년부터 약 40년간 800여 건의 담배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되는 동안 담배 회사들엔 단 1센트의 손해 배상도 부과되지 않았다. 암에 걸린 개인(원고)과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 담배회사(피고)와의 지루한 법정 싸움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1993년부터 ‘제3의 물결’이 밀려왔다. 담배 회사들의 내부 기밀문서가 폭로되면서 담배 회사가 담배의 중독성ㆍ발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광고를 계속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물결은 개인이 아니라 흡연으로 인해 의료비를 추가로 병원 등에 지불하게 된 주(州) 정부가 소송에 직접 나선 것이 특징이다. 메디케이드 등 빈곤층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주 정부가 ‘링’ 위에 오르면서 일방적이던 담배 소송은 승패를 점치기 힘든 접전 양상을 띠게 됐다. 주 정부가 원고인 재판에선 개인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와는 달리 피고 측(담배 회사들)이 “당신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담배를 피운 것이 아니냐”는 공격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1998년 11월 4개 담배회사들이 미국의 49개 주정부에 2460억 달러(약 260조원)를 배상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캐나다에선 모든 주 정부들이 국내외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 배금자 변호사는 “캐나다 주 정부는 담배 소송에서 쉽게 이기기 위해 특별법을 먼저 제정했다”며 “흡연과 암의 인과 관계를 따질 때 통계나 역학조사 결과도 인정한다는 것이 특별법의 주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에선 담배 소송에서 지면 패가망신
한국엔 아직 담배 소송(3건 진행 중) 관련 대법원 판례가 없지만 일본엔 있다. 폐암· 폐기종·후두암에 걸린 흡연자 6명이 JT(일본 담배산업주식회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과 자동판매기에서의 담배 판매 금지, 포장지에 발암 등 흡연의 위험을 명시하도록 요구하며 1998년 도쿄 지방법원에 소장을 냈다. 2003년 법원은 “원고의 질병엔 다른 요인도 있어 흡연과의 인과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담배는 기호품이며 니코틴 의존성은 알코올(술)이나 금지 약물에 비해 훨씬 약하므로 자기 책임이 크다”며 피고(JT)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일본 대법원은 2005년 원고 패소를 최종 확정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은 “대법원 판례가 존중되는 일본에선 담배 소송에서 원고가 이길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현(縣) 등 지방정부도 정부기관이나 다름없는 JT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연합(EU)은 거의 담배 소송 무풍(無風)지대다. 영국에서 담배 소송이 극히 드문 이유에 대한 연구 논문이 발표될 정도다. 배금자 변호사는 “영국 정부는 1964년부터 해마다 『담배 백서』를 내는 등 담배 규제와 교육·홍보에 열중이어서 흡연의 해악성이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다”며 “소송에서 지면 소송비용의 100%를 진 사람이 부담하게 돼 있는 것도 담배 소송이 드문 이유”라고 소개했다.

‘흡연자의 천국’으로 통하는 프랑스에서도 담배 소송 사례를 찾기 힘들다.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원칙 때문에 담배 소송에 나섰다가 지면 패가망신한다는 두려움도 작용한다.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 변호사는 “프랑스인은 독일의 히틀러가 강력한 금연 정책을 폈다는 반감 때문인지 담배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며 “흡연은 자신의 의지란 담배회사들의 주장이 먹힌다”고 전했다.

호주에선 담배 포장지의 75% 이상에 흡연의 폐해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여기선 반대로 담배회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이를 폐지하라며 담배 소송에 나서고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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