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버버리·디올·지방시, 서울 매장 키우는 까닭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서 새 매장을 짓고 있는 크리스찬 디올의 공사현장. 가림막에도 디올의 대표 제품 이미지를 그려넣었다. [사진 채정원]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시작되는 이른바 ‘청담동 명품거리’. 요즘 이곳에선 곳곳에서 건물 공사용 가림막과 마주친다. 우선 청담 사거리 입구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버버리 매장. 내년 7월 오픈을 목표로 단장 중인 이 매장은 버버리의 대표 상품인 의류와 가방, 액세서리는 물론 브릿·런던·프로섬 라인을 모두 전시하게 된다. 버버리코리아 한국지사가 입점할 이 10층짜리 건물에 버버리는 건물 건축비를 빼고 렌트비로만 200억원을 투자했다.

버버리 매장에서 한 건물을 건너뛰면 명품 그룹 LVMH의 대표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올의 플래그십 매장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3월 시작된 공사가 내년 상반기에나 마감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약 1000㎡의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5층의 대형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남성 매장은 세계 최대 규모다. 디올이 이 매장에 투자한 금액은 약 500억원. “세계 최대 규모인 도쿄 오모테산도 매장보다도 일부 품목 매장은 더 규모가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설계는 물론 인테리어 마감, 소품 하나까지 예사 공을 들이는 게 아니라고 건축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버버리와 디올뿐만이 아니다. 디올 매장 바로 옆 구찌 매장도 지난해 새 단장을 끝냈고, 지방시 역시 새 매장 공사를 다 마치고 외관 마무리 공사를 진행 중이다. 프라다는 내년 상반기에 매장 리뉴얼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고, 루이뷔통·에르메스도 매장 재단장을 하려 한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 왜 이렇게 청담동 명품 거리에 공을 들이고 있을까. 물론 한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명품 시장 크기가 크긴 하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은 세계 8위 규모.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새 매장을 내고 기존 매장을 재단장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는 시장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 나오면 중국 매출 세 배로
그렇다면 이런 투자는 무엇을 노린 걸까. 최근 한국을 찾은 발렌티노 아시아 담당 사장 올리버 양(Oliver C.F. Yang)과 대화를 나누며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영애·송혜교·전지현·윤은혜 같은 한국 연예인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어떻게 한국 배우들의 이름을 다 아느냐고 물으니 “요즘 홍콩 플래그십 매장을 열 때 한국 배우나 가수가 참석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행사라고 평가받지 못한다”며 웃었다. 한국지사에서 “이런 배우가 행사에 참석하면 어떠냐”고 묻기 이전에 “누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본사에서 한국지사에 요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류 열풍 때문에 한국 배우가 움직이면 중국 명품시장의 브랜드 판도가 바뀐다는 뜻이다.

명품 브랜드가 청담동 명품거리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래그십 매장은 원래 제품을 팔겠다고 여는 매장이 아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매장은 브랜드 이미지를 파는 곳이다. 브랜드의 대표 모델과 라인별 상품을 모두 모아 고객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일종의 ‘광고판’이다. 오히려 실제 명품을 살 때는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훨씬 많다. 하지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형성된 브랜드 정체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백화점을 찾는 고객도 줄어든다는 것을 브랜드는 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최근의 청담동 공사 붐은 일정 부분 중국 시장을 노린 움직임이다. 중국 명품 시장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전 세계 명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 본사에서 오는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요즘 유럽 백화점 명품 매장에는 중국 사람들만 보인다” “중국에서 뜨는 브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신장률이 좋은 브랜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중국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미 지난해에만 400만 명에 육박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갔더니 뭐가 유행이더라”는 말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강력한 입소문이 된다. 한국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통한 홍보는 더욱 강력하다. 최근 만난 김효상 티파니코리아 지사장은 “한류 콘텐트 바람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중국 젊은이들이 아이패드로 실시간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유행을 따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방영된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열쇠 모양 티파니 목걸이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직후 중국과 홍콩에서 그 목걸이 매출이 세 배나 뛰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한 홍보 효과가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빨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성숙기 시장 … 희소성으로 승부
명품 브랜드가 청담동을 단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한국 명품 시장은 지난 20년 동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필자가 명품 바이어를 맡은 지난 10년 동안에만 명품 시장 규모가 어림잡아 10배 정도로 커졌다. 신세계백화점만 해도 10년 전 30여 개에 불과하던 명품 매장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280개나 된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이 성장세가 주춤해졌다. 많은 이가 경기를 탓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선 명품 시장이 워낙 성장할 만큼 성장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소비자의 브랜드 이해가 넓어지면서 특정 브랜드에만 몰리던 매출이 분산되고 있다. 즉 시장 성장세는 둔화되는데 선호 브랜드는 더 늘어나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이른바 ‘명품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까.

성장기엔 국내에 진출한 모든 명품 브랜드가 웃었다. 다른 명품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도 매년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했다. 지금은 다르다. 성숙기 매장에선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다. A브랜드가 뜨면 B브랜드 매출이 줄어들고, B 브랜드가 뜨면 C브랜드 매출이 줄어드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대에 명품 브랜드들은 어떤 전략을 쓸까. 매장을 늘리고 더 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구애할 것 같지만 아니다. 정반대다. 매장 수를 줄이고 기존의 매장에 더 힘을 쏟는 ‘희소성’의 전략을 택한다. 최근 몇몇 브랜드가 매출이 부진한 백화점에서 철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신 기존 매장의 크기를 늘리고 더 고급스럽게 꾸며 ‘선두권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려 한다. 청담동 명품거리 공사 붐의 또 다른 이유다.

이래저래 당분간 청담동 명품거리는 부산할 것이다. 성숙기로 접어든 한국 명품 시장에서 어떤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지, 종국에는 중국 시장의 패권까지 잡을 수 있을지. 또 하나의 흥미로운 레이스가 시작됐다.



채정원 신세계백화점 해외패션팀장은 백화점 업계 최고의 명품 전문가. 2004년부터 명품 바이어로 일하며 서울 본점과 강남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 신세계 모든 점포의 명품 브랜드 입점 실무를 담당했다.

채정원 신세계백화점 해외패션팀장

중앙SUNDAY 구독신청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