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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는 존재하는가-YMCA 시민논단 「그 논의의 반성과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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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청년 문화 논쟁이 각 「매스컴」과 대학신문 등을 통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청년문화가 구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70년대 초. 60년대 중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반체제·반문화 운동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가에 휘몰아친 월남전에 대한 반전 「무드」와 함께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일체의 「기성」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우드스토크·페스티벌」을 비롯한 수많은 「로크·페스티벌」을 벌이면서도 「광란 속의 질서」를 유지, 청년 문화란 것을 형성해 나갔다. 이같은 서구의 「Youth Culture」(청년문화)가 지금 우리나라에도 존재하느냐, 않느냐의 시비는 그 논의의 시발점부터 완전히 둘로 나누어져있다.
외국의 것을 겉껍데기만 모방한 「청년적 문화」같은 것이 있을 뿐이라는 부정론에 대해「통기타·청바지·생맥주」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청년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반론이 맞서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청년문화의 기수임을 자처하고 나서는가 하면 그에 대한 거부반응도 주목할 만큼 심각하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청년문화란 마치 「비행접시」같은 존재인 것 같다.
나타났다는 보도나 주장은 많았지만 그 실체를 똑똑히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던 비행접시.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 무엇이 어른거리는 것도 같지만 외형적으로 나타난 그들의 행태 양식은 단순히 무엇을 모방한 것만 같은 느낌이 짙다고들 한다.
또 일부에서는 고통스러운 침묵을 되씹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두들기는 행동을 하나의 굴절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원래가 청년문화란 기성문화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반드시 젊은이들만이 향유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만 청년문화인으로 행동하고 나이가 들면 기성문학에 동화돼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하나의 독창적인 사상과 창의성을 가지고 저질의 대중문화를 순화하고 기성문화를 혁신해 나가는 게 청년문화의 본질이며 당위성이라고들 한다.
어쨌든 그 빈도나 열기에 반비례라도 하는 듯이 청년문화논쟁의 핵심은 희미해지고 그 존재 여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에 조차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한 채 혼란만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YMCA는 『청년문화 논의의 반성과 비판』이라는 주제로 3일 저녁 시민논단을 갖고 논쟁들을 정리, 그 방향을 잡아 보려고 시도했다.
참가 연사들은 우선 「통기타·청바지·생맥주」의 상징성에 의견을 전혀 달리했다. 이어령 교수(이대·문학평론가)는 청바지 등을 청년들의 『동질성의 표현』으로 보는데 반해, 조해일씨(작가)는 『문화는 창의적이며 이념 지향적인 정신의 산물』이라고 전제, 『청바지 같은 일시적 유행의 복장을 문화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서광선 교수(이대·신학)는 청바지 등을 소비문화의 소산으로 보고 『소비의 다양화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사상을 촉진시킨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또 서 교수는 그동안의 청년문화 논쟁은 ① 한국적 특수상황을 외면했고 ②무의미하게 「엘리트」적인 것과 저속을 구별하려 했으며 ③민속문화나 전통문화에 연결하려는 노력이 미약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당위론 보다는 현실적인 직시를 강조하면서 『청바지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권위주의, 물질주의, 상업주의 등에 대한 반항의식의 표현으로 봐야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조씨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청년 문화의 논의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은 결코 『기성인 들의 공언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이같은 견해차이는 젊은이들의 의식과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오는 것 같다.이 교수가 논쟁의 핵심은 『한국적 정치의 복합 상황에 있다』고 한 것이나, 조씨가 『청바지 등은 문화의 외양일 뿐』이라고 한 말 등은 「제한적인 상황」등을 지적한 것들이라고 해석된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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