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군소정당 진입 장벽 허문 헌재의 역사적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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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 총수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정당에 대해 등록을 취소토록 한 정당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그간 군소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봉쇄해온 법 조항이 용도 폐기된 것이다. 정당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 정치 여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어제 헌재는 이른바 ‘2% 룰’을 규정한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3호에 대해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아울러 정당 등록이 취소된 정당의 명칭과 동일한 명칭을 다음 총선 때까지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정당법 제41조 제4항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단지 일정 수준의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군소정당이라는 이유로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배제하는 입법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녹색당과 진보신당, 청년당 등은 기존 명칭을 사용해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헌재 결정은 군소정당에 대한 진입장벽을 없앴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경쟁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을 전제로 한다. 지지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정당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특히 정당 등록 취소는 존립 기반 자체를 없애는 조치다. 이 조항이 5·17 쿠데타 직후인 1980년 11월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처음 도입됐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지적했듯 도입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정당법 개정 과정에서도 입법취지를 찾을 수 없다. 이런 법 조항이 34년간 유지돼온 것은 여야의 기존 정당들이 새로운 군소정당의 출현에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번 위헌 결정은 한국 정치에서 ‘다양성과 개방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군소정당 역시 책임 의식을 갖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진지한 자세로 참여해야 한다. 국민생활 속에 있는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입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