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령회사만 18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74억원을 집어삼킨 회사는 간판하나 변변히 없는 유령회사뿐이었다. 74억원 부정융자사건으로 말썽된 박영복은 은행돈을 빼내는 눈가림 매체로 모두 18개의 유령회사를 차려 회장·대표이사·감사·이사등 요직에 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 서울·부산·대구 등에 금녹릉상·남도산업·영동통상·부홍릉상·영안통상·월성통상·현대통상·강원통상·서진양행·유명양행·범한양행·예미통상·선우주식회사·정화기업·대구제빙·중앙합동·제3건설 등 허울뿐인 사무실과 공장을 차려 수출업체로 위장, 거드름을 피우고 다녔다.
박은 이들 유령업체를 발판으로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은 다음 금새 회사문을 닫거나 상호를 바꾸는 등 마치 도깨비처럼 필요할 때마다 회사를 설립하곤 폐업해왔다.
거액융자의 발판이 된 금녹통상드 이미 72년11월이후 사실상 없어졌고 지금까지 겨우 남아있는 업체는 남도산업과 대구공장 등 몇개뿐으로 그나마 지난해3월부터 가동중단상태.
사건이 터진뒤 자금까지 박의 사기행각의 밑천이 됐던 유령업체의 자취를 찾아 살펴보면.
▲금녹통상=72년11월말까지 서울중구예관동70의27 시사「빌딩」503호와 504호실을 썼다. 이「빌딩」아래층에는 박의 첫 사기융자대상인 중소기은 퇴계로지점이 들어있어 박이 바로 『쌀가마니 속의 쥐처럼 웅크러들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있다. 박은 72년10월 「밍크」위장수출사건으로 구속된 뒤 어디론가 사무실을 옮겨 없어져버렸고 지금은 D「비타민」회사 영업부와 학술광고부가 입주해 있다.
사무실을 빌 때 「빌딩」관리사무실측에서 『어디로 사무실을 옮기느냐』고 묻자 『회사가 망했는데 무슨놈의 사무실이냐』풀이 죽어하더라는 것. 「빌딩」수위 조경삼씨(50)는 당시 회사간판은 금녹통상으로 붙었지만 현대통상·정화기업둥 3∼4개 회사가 같은 사무실을 썼고 직원은 몇명되지 앉았다고 기억했다. 또 외국에서 부쳐오는 항공우편물이 자주와 꽤 실적이 좋은 수출업체인 줄만 알았으나 이번 사건이 터져 엉터리 회사인걸 알게 됐다는 것.
금녹통장은 71년5월18일 대표이사 박명의로 설립 등기되어 처음에는 서울중구장충동2가200의56에 조그만 사무실을 차렸다. 가짜「밍크」사건을 불러일으킨 각종 모피의 가공·제조판매를 설립목적으로 내세워 양산·가구·공예품·직물·봉제품 등의 제조판매도 한다고 내세웠었다.
▲남도산업=가장 최근까지 존재했던 회사. 73년4월25일 서울중구저동 쌍룡「빌딩」18층에 80평짜리 사무실을 보증금 4백40만원, 월세 36만3천원에 세들었다가 이번 사건이 터지자 지난 20일 문을 닫았다.
쌍룡「빌딩」관리과장 김모씨에 따르면 계약당시 손회수씨 명의로 임대계약됐으나 해약할때에는 최재영씨 명의로 된 서류를 꾸며와 손씨 명의로 서류를 다시 만들어 해약했다는 것. 「빌딩」경비원들 얘기로는 남도는 입주이래 줄곧 경비수칙을 어겨 『뭔가 떳떳하지 못한 회사』라는 뒷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쌍룡「빌딩」에 세든 23개회사는 모두 관리사무실에 열쇠를 맡기지만 유독 남도만은 『비밀이 샌다』며 출입문 열쇠를 따로가져, 경비원들이 방범·방화순찰때마다 애를 먹었다는 것.
사무실안에 어린이장난감등과 T「샤쓰」·여자옷가지등을 전시한 진열장이 있었고 사장실·간부실·사무실이 나눠있었다. 사무실에 드나들던 청소부에 따르면 박은 「회장님」으로 통해 운전사 문일남씨가 운전하던 서울1자6141「시볼레」1700을 타고 다녔으며 가끔 35세쯤된 부인과 5세쯤된 사내아이를 동반하기도 했다.
주차장의 다른 운전사등은 문씨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나 「영등포공장」이나 「충무로사무실」얘기를 듣기도했다. 경비원이나 청소부들에게 수고비를 준적은 한번도 없어 구두쇠 회사로 알려졌으나 월세를 거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
▲남도산업대구공장=대구시동구수성동l가649의29에 있는 남도산업대구공장은 부지 2천8백60평, 건평 5백80평의「나일론」직물 생산공장. 이 공장은 72년2월부터 가동을 중단하고있으며 지난2월에는 간판까지 떼어버렸고 현재 화성편직회사가 세들어 있다. 큼직한 청색 철대문은 하도 오랫동안 열어본적이 없었던지 색이 바랜채 굳게 닫혀있다.
정문옆 수위실의 신모씨는 서울본사로부터 『어떤사람이 와도 공장안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면서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수위실 안쪽 5백여평의 정원에는 값비싼 정원수 20여 그루가 들어서 있고 박의 친형 박영대씨(45·모회사상무)가 살고있는 2층양옥(80평)이 1채 있다.
철근 「콘크리트」로 된 공장 3채, 창고 1채, 기숙사1채 등은 텅비어있고 공장부지주위에는 높이 2m의「블록」담이 쳐있다. 박은 71난12월 전소유주 김모씨로부터 공장을 인수, 월성통상이란 간판을 걸고 대표이사에 이상극씨를 앉혔다.
당시 종업원 1백20여명이 밤낮으로 조업, 수출용「나일론」직물인 「도로코트」와 「나세루」등을 생산했으나 72년2월부터 돌연 휴업했다는 것.
이 공장은 지난 2월부터 화성편직 대표 김모씨가 세들어 종업원 8명을 데리고 하루2천「야드」의 옷감을 짜고있다. <김재?·대구 임수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