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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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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4년 1월 7일자 34면>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소통의 시작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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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으로서 올해 국정운영의 큰 그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통일시대 기반 구축’이란 양대 과제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적 상황과 도전적 비전을 잘 담아냈다. 정치권 안팎에서 나도는 개각이나 개헌 같은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간결하고 분명하게 답변함으로써 투명성과 예측성을 높이기도 했다.

 다만 원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요구와 주장을 일도양단식으로 잘라 거부한 것은 아쉽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의혹 사건) 특검은 재판 중인 상황으로 대통령으로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회대타협위원회 구성은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에 집중하고 응원하는 게 먼저다”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회견 전 “많은 국민과 민주당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에 응답하는 기자회견이 되길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응답해야 할 대상으로 특검 수용, 불통 논란, 사회대타협위원회 구성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대변하는 정치적 반대층과 국회에서의 위상을 감안해 더 경청하고 이해하는 정성스러운 모습이 필요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안에 따라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좀 더 간절하게 설명하거나 논란이 이는 대목에서 한번 만나 더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소통은 이제부터라고 본다. 앞으로 더 많은 기자회견, 간담회, 국민과의 대화를 수시로 열고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만남을 자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신년 회견이 소통의 시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겨례 <2014년 1월 7일자 35면>
감동도 비전도 없는 ‘불통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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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으로 6일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집권 2년차 국정 운영 구상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회견의 상당 부분을 경제 분야에 할애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나 구상을 밝혔다기보다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특히 회견을 계기로 소통의 전기를 마련해달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회견이었다.

 이번 회견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미흡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질문을 미리 파악한 듯 줄곧 메모를 보며 답변했다. 청와대는 사전에 질문 내용을 통째로 입수해 답변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 각본에 따른 이런 회견은 기자회견의 형식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대통령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싶어하는 국민 바람에도 어긋난다. 참모들이 써준 답변지를 줄줄 읽는 대통령한테서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신념을 읽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이 회견에서 소통에 대한 그간의 국민적 요구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박 대통령은 “기계적 만남이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국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만이 진정한 소통이 된다. 이는 소통 상대를 자기 편할 대로 고르겠다는 독단이요 전횡이다.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실질적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특검 요구는 재판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거부했고,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 논의는 지난 연말의 1차 입법으로 완료됐다고 못박았다. 이런 접근법은 지난 1년간 국정원 사태를 눈덩이처럼 키워온 무책임한 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겠다는 게 눈에 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목표지향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자칫 성장률 4%, 국민소득 4만달러 등 계획된 수치 달성에 매달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정책을 추진할 우려가 있다.

 경제혁신을 위한 ‘3대 추진 전략’도 우리 경제의 큰 흐름을 바로잡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것들이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 공공부문 개혁을 화두로 제시했는데, 이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성장률 하락이나 분배 악화 등을 개선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경제 민주화 등 우리 경제의 토대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북한에 ‘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을 뿐 종전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원론적인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복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앞세움으로써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으니, 그것이라도 제대로 실현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박 대통령의 회견은 새해를 맞아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신년 회견의 취지에는 크게 미흡했다.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정책과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려 들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자세도, 대선 때 자신을 찍지 않은 48%의 국민을 포용하려는 아량도 없었다. 한마디로 감동도 비전도 없는 동문서답식 회견이었다.

[논리 vs 논리] “투명성 높였지만 소통 신경 써야” vs “형식·내용 모두 미흡”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방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강조된 것은 경제혁신과 통일이다. 경제개발 3개년 계획 전략도 밝혔다.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통해 경제 기초를 튼튼히 하고, “공공기관의 정상화와 재정·세제 개혁, 원칙”으로 바로 선 경제를 추진하고, “고용창출력이 높고, 특히 청년이 선호하는 보건의료와 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 5대 유망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할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로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대화 틀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소견도 밝혔다.

 국가 기관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한 특검에 대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국가 기관의 정치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됐으므로 소모적인 논쟁을 접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두고 쓴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 제목을 보자.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소통의 시작이 되기를’은 중앙일보 사설 제목이다. ‘감동도 비전도 없는 불통 회견’은 한겨레 것이다. 두 신문 모두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사설의 어조와 뉘앙스는 다르다.

 중앙일보 사설에 사용된 어휘를 보자. ‘일목요연’ ‘분명’이라는 단어군과 ‘아쉽다’ ‘필요했다’는 단어군이 교차하고 있다. 박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의 언어가 투명성과 예측성을 높인 측면이 있지만 야당과의 소통이 불충분했다는 측면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한겨레의 입장은 이와 판이하다. ‘한마디로 감동도 비전도 없는 동문서답식 회견’이었고,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미흡’한 회견이었다는 게 한겨레 논평이다. 또 사전에 ‘참모들이 써준 답변지를 줄줄 읽는 대통령한테서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신념을 읽기는 힘들다’고 일침을 놓는다.

 박 대통령의 언어가 간결하고 분명하다는 중앙일보의 평가는 어떤 측면에서만 타당하다. 경제 혁신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밝혔다는 점, ‘통일은 대박’이라는 언어로 통일이 경제에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는 점, 국가 기관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한 특검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접자고 한 점에서는 박 대통령의 언어가 간결했고 분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 간결성과 분명성이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불통의 언어일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보자. ‘민주당이 대변하는 정치적 반대층과 국회에서의 위상을 감안해 더 경청하고 이해하는 정성스러운 모습이 필요했다’는 중앙일보 언급도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자세도, 대선 때 자신을 찍지 않은 48%의 국민을 포용하려는 아량도 없었다’라는 한겨레 언급도 간결하고 분명한 언어가 오히려 불통의 언어일 수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신년 기자회견에 드러난 박 대통령의 경제적 비전에 대한 두 신문의 논조도 다르다. 중앙일보는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적 상황과 도전적 비전을 잘 담아냈다’고 언급한 반면, 한겨레는 ‘경제 민주화 등 우리 경제의 토대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이라고 언급했다.

 한겨레가 말하는 ‘우리 경제의 토대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이란 무엇인가. 바로 분배의 개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복지나 경제민주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언급이 박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는 없었다. 오직 성장과 혁신만 강조했을 뿐이다. 공공부문 개혁,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혁신, 내수 활성화 등은 복지나 경제민주화 없이는 공허하다. 복지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대통령 발언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중앙일보의 ‘앞으로 더 많은 기자회견, 간담회, 국민과의 대화를 수시로 열고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만남을 자주 가져야 한다’는 주문도, 한겨레의 ‘대선 때 자신을 찍지 않은 48%의 국민을 포용하려는 아량’을 가지라는 주문도 박 대통령 지지층이 아닌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주문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출마 당시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의 첫 번째 항목이 경제민주화였다는 걸 감안하면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을 듣고 싶은 사람과의 소통은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못박았지만 현대 국가에서의 국민의 이익이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다. 국민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실체다. 이익의 크기가 한정돼 있다면 어느 쪽 이익은 반드시 다른 쪽 손해를 전제로 한다. 그 둘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의로운 통치 행위임은 군말을 보탤 여지가 없다.

김보일·서울 배문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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