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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앵무새와 물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글」에 많은 것은 뭐니 해도 뱀일 것이다. 아주 큰 것은 아니나 길이 5m쯤 되어 보이는 「스쿠리」 (물뱀)를 물가에서 보았고 독사도 몇 마리 보았다.
어떤 동물보다도 이 뱀 종류가 많다는 것은 인간의 원죄와도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함으로써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했다는 「사탄」인 뱀! 그 후상가 「아마존」에 많다고 하지만 여기 사는 뱀은 그런 악덕한 동물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침 일찍부터 「정글」 지대를 싸다녔더니 배가 몹시 고파서 현기증이 났다. 지금까지는 먹을 것을 원주민인 「인디오」들에게서 해결해 왔는데 좀체로 「인디오」 마을이 보이지 않아 점심을 굶게 되었다. 이 「정글」에는 이름 모를 열매들이 많이 열려 있지만 섣불리 따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흔히 알려진 식용 과실이라면 마음놓고 따먹겠지만 「바나나」며 빵 나무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길이 10cm 넘는 독거미>
「인디오」들은 못 먹는 짐승이나 물고기나 열매가 없다고 하지만 나에겐 이름 모를 열매들이 두렵기만 하였다.
그런데 이 웬 은총일까, 숲 속에 무르익은 「파파이어」 열매가 보이지 않는가. 나는 달려갔으나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옆에 서 있는 나무엔 뱀이 칭칭 감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까이 갔는데도 꼼짝 않고 있었다. 이 뱀이 「파파이어」 열매를 따먹으라고 유혹한 것이 아니겠거니 나도 모르게 「파파이어」 열매를 따서 한 입 물었다. 배가 고팠다가 따먹는 무르익은 「파파이어」의 열매의 향취란 어디에다 비기랴. 이것은 선악과가 아니라 생명의 과실이기에 원죄와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이 「정글」엔 뱀뿐만 아니다 전갈이며 독거미들도 많이 사는 만큼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이 거미는 몸길이가 10cm가량인데 성이 나면 두 다리로 벌떡 서서 달려든다. 독사보다도 독이 세기 때문에 원주민들도 매우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무서운 것도 이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글」속에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새들이 사는데 특히 앵무새가 많이 눈에 뜨인다. 「브라질」이 발견되었을 때 「앵무새의 나라」라고 불렸던 만큼「아마존」을 상징하는 새는 이 앵무새다.

<「파파이어」로 요기 하고>
「정글」속의 앵무새들 사이를 쏘다니면서 큰 소리로 『앵무새씨, 안녕하십니까?』하고 자꾸 불러 보았으나 메아리처럼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무런 반향이 없는 것은 서운했다. 「로빈슨·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앵무새와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고독을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문뜩 생각나서 다시 되뇌어 보았으나 이 지상의 가장 큰 해학이라 할 이 앵무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한이었다.
다행히 무르익은 「파파이어」 열매로 허기증을 메우고 새 힘이 솟아 강가의 오솔길을 달 리고 있는데 삽시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이린 번개·천둥·벼락을 호되게 받아 본 것은 제3차 여행 때 「파나마」 운하에서였는데 이 「아마존」에서 치는 번개와 천둥은 더 강렬했다. 이 요란한 소리는 무엇인가를 파괴하기보다는 창조하기 위한 서곡으로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아마존」의 이 번개와 천둥을 고스란히 녹음·녹화해 두면 얼마나 좋으랴 만 그런 준비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몇m 앞 안 보이는 스콜>
한참 번개를 치고 천둥을 때리다가 자학이랄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울음 (소나기)을 터뜨리는데 이것 또한 장관이었다. 「아마존」강의 물을 하늘 높이 걸어 올렸다가 내리 쏟는다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분명히 「아마존」의 기상은 원시적인 물리 작용이었다. 이 「스콜」이 쏟아질데엔 몇m 앞이 안 보일 만큼 「비의 장막」을 이루었다. 「아마존」은 하늘까지가 원시적인 모습을 지니는 것일까.
나는 나무 아래로 피하지도 않고 이 무서운 힘으로 내리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한참 서 있었다. 마음놓고 「아마존」 하늘의 세례라 할 소나기를 맞았는데 이상하게도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자주 이런 「스콜」이 쏟아지는 것은 이 원시림의 동식물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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