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산 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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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사부의 경리 관계 실무자들이 72년과 73년의 예산 가운데서 상당한 거액을 관례적으로 유용 또는 변태 지출하고, 그중 상당액을 횡령해 왔다는 혐의로 수사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협의를 받고 있는 관계자들이 한, 두 국도 아닌 6개국에 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 부의 거의 모든 경리 조직이 부정행위에 관련된 셈이고, 또 그와 같은 경리 부정이 72년과 73년의 두 해에 걸쳐 장기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코 일시적인 사건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다. 조직적이며 거의 제도화되다시피 한 비위의 노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경리 부정이 지난번의 공무원 숙정 때에도 노출되지 않았었다는 것부터가 더욱 문제다. 7개국 중 6개국의 경리 실무자들이 2년에 걸쳐 저지른 예산의 변태 지출과 횡령이라면 이미 당연히 적발 됐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실상, 예산의 변태 지출·유용·횡령 등은 오로지 몇몇 경리 담당 실무자의 마음대로 행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이며 부분적인 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경리 조직이 관례적으로 예산 부정에 가담할 수 있었던 것은 경리 담당 책임자 이외에도 전체 기구가 이를 용인하고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실 상급자의 결제 없이 경리 실무 담당자만의 독단으로 변태 지출과 유용이 어찌 가능하며 횡령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예산 부정의 소지는 정부 예산 제도 자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되고, 예산의 영달과 지출 과정에서부터 그러한 부정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예산의 변태 지출과 유용은 그 집행 과정에서 엄격히 제한하고 횡령의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사후적으로도 엄격히 이를 따지는 제도의 확립이 아쉬운 것이다.
예산 부정의 소지는 비단 예산의 영달과 지출 과정 면에서뿐만 아니라, 예산의 요구와 편성 과정에서도 깃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산 편성 때마다 각 부처는 다투어 방대한 예산을 요구하고 낭비와 다액 지출의 기회를 누리려고 한다. 마치 그것은 일보다도 돈 쓰는 재미로 예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부정의 소지는 바로 이런 데서부터 싹 트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부정의 소지는 처음 예산 편성의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다시 형식화한 예산 심의 과정의 「루프·홈」이 마침내 그 집행 과정에서 이번 경리 부정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고만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뜻에서 예산 부정은 오로지 보사부에 한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 예산의 편성과 집행 과정 전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행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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