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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탐사

경제계획의 부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그것은 참으로 촌스럽고 어설퍼 보였다. 왠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복고풍 패션이 돌아온 것 같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선보인 이른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말이다.

우선 이름부터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개발 대신 혁신을 넣었지만, 그 또한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에 선보였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진부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계획이 급조됐다는 인상이 역력했다. 충분한 사전 검토와 논의를 거쳐 수립된 전략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맞춰 부랴부랴 만든 구상이라는 혐의가 짙다. 대통령이 먼저 큰 제목을 밝히자 현오석 부총리가 곧바로 “2월 말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겠다”고 한 것을 보면, 계획이 미리 준비되지 않았던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간을 3년으로 한 것도 과거처럼 5년으로 하면 대통령의 임기를 넘어서고, 4년으로 하자니 어감이 좋지 않아 3개년 계획으로 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골자는 공공기관 개혁(비정상의 정상화)과 창조경제 구현, 내수 활성화다. 정부는 이 세 가지 항목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과제라고 강조한다. 각각의 과제를 따져보면 다 맞는 말이고 해봄직한 일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국가경제계획의 틀 안에 한꺼번에 몰아넣기에는 왠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서로간의 연관성이 확실치 않고 맥락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공기관 개혁이나 창조경제 구현은 이미 지난해부터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어 추진해 오던 일 아닌가. 내수 활성화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 활성화란 명목으로 부쩍 강조해온 경기 진작책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혁신적이지도 않은 기존의 정책들을 경제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는 폄훼를 들을 소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적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인 성장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바로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이라는 수치목표를 내놓은 것이다. 고용률 70% 이외에는 어떠한 성장 목표도 제시하지 않겠다던 그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이른바 ‘747공약’(성장률 7%, 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의 재탕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스스로가 “막연한 ‘국민행복’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계량화된 목표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수치목표를 단정하지 않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앞당기겠다는 식으로 살짝 유보조건을 달기는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성장담론을 정식으로 제기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는 이번에 제시한 혁신의 과제가 역대 정권이 수차례나 시도했음에도 번번이 실패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원칙과 신뢰를 공언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라면 뭔가는 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큰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만 해도 역대 정권마다 노조의 반발에 밀려 실패했거나 아예 손도 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철도파업에 대한 결연한 대처에서 보여지듯이, 박근혜 정부라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수 활성화의 관건으로 제시한 규제 완화 역시 역대 정권마다 실천을 장담했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한 사안이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챙기면 분명히 결과도 달라진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 완화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역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성취를 거두는 셈이다. 장래에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 않는가. 비록 경제혁신계획이 짜임새가 없고 어설프면 어떤가. 성장의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것을 깨닫는 데 지난 1년간 먼 길을 돌아왔다.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jong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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