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5)|제3장 동북지방의 한적문화 탐방|제12화 추전미인과 북청미인(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추전시의 서북. 동해쪽으로 돌출한 남록(오가)반도는 면적 약 2백30평방㎞의 제법 넓은 땅덩어리이다.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른바 해성단구. 아득한 옛날, 이 반도가 바닷 속으로부터 솟아나 융기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해변도처에는 형형색색의 기암절벽들이 울룩불룩 솟아 일대 장관이다. 여기 동굴을 뚫고 넘나드는 바다물결이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공중에 퉁길 때면 오색 영롱한 무지개가 된다.
그런데 이 남록반도 일대에는 예부터 이른바 「나마하게」라 불리는 기이한 풍습이 지금껏 전승돼 내려옴으로써 일본 각지로부터의 관광객을 끌고 있다.
나마하게 풍습의 내용인즉 우리에겐 조금도 생소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매년 섣달 그믐날 밤, 동네 젊은이들 몇몇이 무시무시한 귀면(탈)을 쓰고 거리를 누비다가 자정 가까이가 되면 가가호호를 찾아가 한바탕 굿을 하고 주인으로부터 주식(주식)의 향응을 받고서야 물러가는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덩달아 하룻밤을 떠들썩하게 새우는 것은 물론이고….

<눈썹 센다고 밤새워>
향로들의 말을 들으면, 이 「행사」는 원래 정월대보름날 밤에 행해지던 것이었는데 어느때부터서인지 섣달그믐으로 날짜가 바뀌기는 했으나 그 뜻하는 바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즉 나마하게란 주로 처녀들과 어린이들에게 정숙(정숙)과 근면(근면)의 미덕을 가르치려는 계율적(계율적) 의미를 가진 행사라는 것.
과연 이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든 사람은 눈썹이 희게 된다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우도록 강제하는 풍습이라든지, 또 술래(귀면을 쓴 사나이)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소리치며 달아나게 하다가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제물(주식의 향응)을 바쳐 용서를 빌게 하는 따위, 그 뜻하는 바는 쉽게 짐작이 갈 만도 하다. 그리고 이같은 행사가 한국의 섣달그믐날과 정월대보름날세시풍속 중에도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실업일본사가 간행한 여행안내서 『동북의 여행』(74년판「블루·가이드북」)을 보면, 이 나마하게에 얽힌 두 가지 전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대보름날 푸닥거리>
그 첫째는 아득한 옛날, 이 고장 남록반도에는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한 괴물이 상륙, 이곳저곳 마을들을 휩쓸고 다니면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웠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 달 밝은 밤에 일제히 들고 나와 굿을 하고 향응을 벌여 이 괴물을 쫓아보냈는데, 그것이 이 나마하게의 시초라는 것이다.
둘째는 더 그럴듯한 설화를 담고 있다. 옛날 옛적 한나라(주=고대일본인들은 한국까지를 포함한 해외선진국을 모두 한나라 즉 「가라구니」라 불렀다)의 임금 무제가 5필의 귀신을 데리고 이곳에 상륙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 무제는 이 귀신들을 사역시켜 부지런히 이 고장에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등 좋은 일들을 많이 했으나 다만 그가 이 귀신들에게도 매년 정월대보름날 하룻동안만은 자유를 허락했기 때문에 이 하루 사이에 동네 처녀들과 어린이들이 잡혀 희생을 치르게되었다. 그 피해를 막기 위한 푸닥거리가 곧 오늘의 나마하게로 전승됐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이 둘쨋번 전설은 우리에게도 꽤 귀에 익은 서라벌의 「도깨비다리」 전설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닌가.

<절세 미녀 도화 전설>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좀 생소할지 모르나, 이 얘기는 지금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아득한 소년소녀 시절, 할머니들에게서 자주 듣던 얘기였을 것이다. 옛날 옛적 서라벌의 서울 사량부에 살았다는 절세의 미녀이자 정숙한 아내로 이름높던 비극의 여주인공 도화에 얽힌 그 전설 말이다.
다만 한국의 이 전실에서는 일본의 나마하게에 비해 얘기가 좀더 극화돼서 전해지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도화를 짝사랑하던 임금 진지왕은 죽어서까지 그 도화를 잊지 못하다가 도화의 남편이 죽고 나자 홀연히 그 앞에 나타나 7일간의 신방을 차린다는 얘기. 그들 사이에 태어난 옥동자 비형은 힘이 장사요, 머리와 재주 또한 초인간적인 신통력을 지녔었으나, 그 역시 끝내는 귀신의 세계를 못 잊어 밤마다 도깨비들과 노닐었다는 얘기.

<계율적 성격의 설화>
여기 비형 자신도 일본의 나마하게 전설에서처럼 도깨비들을 부려 서라벌 사람들을 위해 모깃내(문천)의 다리를 놓고, 흥강사를 짓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으나 그 도깨비들의 장난질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마침내는 도깨비대장을 붙잡아 목을 댕강 잘라버리지 않을 수 없게된다는 얘기 등이 다를 뿐이다(이 전설에 관해서는 신래현 저『조선의 신화와 전설』 태평출판사 간 PP115∼125 참조). 요컨대 정숙과 근면을 가르치려는 계율적 성격에 있어 한국의 도깨비다리 전설과 일본 추전현 남록반도의 나마하게 전설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추전미인의 고장인 이곳 남록반도에 나마하게 전설이 전승돼 내려오는 내력 또한 그 의미를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들의 조상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서라벌의 도깨비다리 전설이 그 설화를 통해서 미인들에겐 정숙을, 어린이들에겐 근면을 가르치려고 했다면, 이 계율적인 교훈을 그들이 옮아간 바다 건너 남록반도에 남겼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겠는가. <이항 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