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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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빈부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잇달아 일어난 유류 파동·자원 파동 등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 질서는 더욱 교란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가 일반은 지금 국제 경제적으로 매우 불리한 입장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통화 질서의 재건 작업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이익이 전적으로 도외시되고 있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국제 무역면에서도 선진국은 자국의 국제 수지 대책을 구실로 후진국의 수출에 직접·간접으로 많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이리하여 이 같은 사실을 목도하고 있는 후진 제국은 선진 제국의 경제적 횡포에 공동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는 9일에 열릴 UN특별 자원 총회는 이른바 선후진 국간의 불평등 문제, 후진국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일 것 같으며, 이번 총회의 결과는 앞으로의 국제 관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UN 자원 총회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귀추를 주목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장래 계획을 국제 조류의 「흐름」이라는 각도에서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우선 이번 자원 총회를 계기로 77개발도상국들이 제시한 13개항 선언문 초안은 선후진국 관계의 근원적인 재편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큰 것이다. 이 선언문 초안은 특히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주권의 재확인을 필두로, 사실상의 자원 식민지 상태에서의 해방을 위한 투쟁도, 그리고 국제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선후진국 간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실현시키는 수단으로서 외국 기업의 국유화, 다국적기업의 통제권, 상품 불매 동맹 및 경제 침략 및 정치적 압력의 공동 극복, 교역조건의 공평성에 입각한 균형 유지, 후진국에 대한 특혜 공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오늘의 국제 정치 및 국제 경제 관계가 여전히 권력 정치적 구조하에 있으며, 국제통화 파동·유류 및 자원 파동을 계기로 그러한 구조가 더욱, 노골화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후진 제국의 상기한 바와 같은 강력한 국제 질서 개편 요구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갈지는 의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비록 선진 제국이 명분상 후진 제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오늘의 선후진국 관계가 일조에 개선될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 제국의 요구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세계 경제 질서는 개편 기운을 더욱 짙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진통 현상이 유발 될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면서도, 여타의 자원이 풍부한 이른바 『제4세계』에는 속하고 있지 않은 것이므로 천연 자원 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77개국 선언 안에 대해서 실로 착잡한 입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후진국 사이에서 천연 자원 문제 때문에 갈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와 같은 천연자원 부족 국은 그 피해를 더 많이 입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적 자원과 잠재적인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국내시장에 대한 주권의 완전한 행사와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특혜 공여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외자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 자료로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이번 「유엔」자원 총회는 선후진국 간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하는 후진 제국의 정치적·경제적 전투 선언을 하기 위한 모임이며 그에 따라서 새로운 자원상의 분쟁 및 파동이 과도기적으로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원 부족 국가인 우리로서도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77개 후진국의 선언문 초안이 내포하고 있는 기본 정신을 우리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소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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