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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굉장히 섬세해요" 세계 각지서 러브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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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메리칸 클래식 캐주얼을 표방하는 Westage의 김동주 디자이너.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컬렉션이 ‘숲’이라면, 트레이드쇼는 현실적 비즈니스가 오가는 ‘나무’라 할 만하다. 브랜드들은 부스를 만들어 신상품을 선보이고 바이어들은 고객들이 지갑을 열 만한 디자인을 골라 거래를 한다. 한 해에도 뉴욕·홍콩·라스베이거스 등 세계 곳곳에서 무수한 트레이드쇼가 벌어지는데, 그중 매년 1월과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피티 워모(Pitti Uomo)’는 역사적으로도, 규모로도 손꼽힐 만하다. 1972년 시작된 이 트레이드쇼는 이제 1000여 개 브랜드가 참가하고 방문객만 3만여 명에 이르는 남성복 박람회 중에 최고로 성장했다. 이런 큰 장을 국내 브랜드들이 놓칠 리 없을 터. 2010년 코오롱 ‘시리즈’가 첫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고 최근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다. 그중 에프.엔.비.씨 바이 인스탄톨로지(F.N.B.C by Instantology, 지일근)·웨스티지(Westage, 김동주)·바스통(Bastong, 기남해)은 특히 주목할 만한 브랜드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신진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사업’에 첫 대상자로 뽑혀 지난 6월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연속 참가하게 됐다. 국내에서도 낯선 이름들이지만 피티 워모에서만큼은 ‘한국 대표 선수’로 점점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7~10일 열렸던 제85회 피티 워모 현장을 찾아 그 활약상을 지켜봤다.

2 F.N.B.C by Instantology의 지일근 디자이너. 3 Bastong의 기남해 디자이너. 4 피티 워모 행사장 내부.

바이어들 눈길 잡을 재킷과 코트만으로 승부

7일(현지시간) 피렌체 고성인 포르테자 다 바소(Fortezza da Basso). 면적 5만9000㎡의 행사장엔 건물마다 부스가 빼곡하게 차려졌다. 세 브랜드의 부스를 찾았을 때 왠지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킷 혹은 코트만 걸려 있는 모양새가 단출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한국 디자이너들은 그것이 바로 피티 워모를 제대로 공략하는 법이라고 입 모아 얘기했다. “하루에도 다 못 볼 정도로 부스가 많고 옷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이것저것을 다 내걸면 안 되죠”(김동주). “바이어의 눈을 단 1초 만에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또 브랜드 컨셉트를 한 번에 알리려면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요”(지일근).

실제로 바스통은 1번부터 7번까지 재킷에 번호를 매기고 각각 ‘전사’ ‘개척자’ ‘균형’ 등 컨셉트에 맞춰 단 7개의 스타일만 선보이는 전략을 택했다. 기남해(35) 디자이너가 2011년 브랜드 론칭 이후 6개월에 하나씩 만든 모델들이다. 이를 조금씩 변주해 가는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게 기씨의 계획. 인스탄톨로지 역시 재킷만을 피티 워모에 들고 나왔다. 지일근(35) 디자이너는 원래 상하의는 물론 다양한 외투류를 만들고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쇼도 열었지만 피티 워모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는 ‘F.N.B.C by Instantology’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내세웠다. 꽃무늬·애벌레무늬·금박 등 화려하고 튀는 패턴과 컬러의 재킷이 주 아이템이다. “이탈리아만큼 재킷 수요가 많은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정통 스타일로 승부를 보면 안 돼죠.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섣불리 못하는 응용을 해 보는 거죠.”

아메리칸 클래식 캐주얼을 표방하는 웨스티지도 넉넉한 실루엣의 재킷과 코트를 무기로 삼았다. “옷을 아는 사람들끼리는 진가를 알 수 있는 옷이에요. 10번 넘는 워싱 처리로 남다른 색감을 냈고, 재킷 중심선에 주머니를 달고 패치워크(조각조각 천을 붙이는 방식)를 적용하는 식으로 작은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했죠.” 김동주(38)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이날 바스통 부스에서 만난 독일 바이어 노르베르트 클로세르씨는 “평범한 점퍼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섬세하게 만들어진 옷”이라며 “옆 부스의 웨스티지 옷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고 평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를 한국 옷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이번 피티 워모에서 세 브랜드는 지난 시즌에 이어 큰 성과를 거뒀다. 웨스티지는 일본 대표 편집숍인 빔스(Beams)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F.N.B.C by Instantology’는 이탈리아 볼로냐·모데나·브레시아 등의 매장과 모스크바로부터 처음 주문을 따냈다. 대표 쇼룸인 아비스타와 바로 계약을 맺었다. 수주 규모가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이라는 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설명이다. 이들은 모두 피티 워모가 끝나자마자 ‘프리미엄 베를린’과 ‘브래드앤버터’ 트레이드쇼에 초대 받아 독일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한국 브랜드, 이탈리아 패션 시장에서 주목”

세 브랜드는 생긴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신진이다. 인스탄톨로지가 2008년, 웨스티지가 2010년, 바스통이 2011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피티 워모에서 낮은 인지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 피티 워모의 진행을 총괄한 EMI의 최고경영자(CEO) 알베르토 사치오니가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스펙을 따지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일했나, 얼마나 유명한가보다 현재만을 본다.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인 브루넬로 쿠치넬리부터 1년차 신진디자이너까지 다 피티 워모에 모일 수 있는 거다.” 그는 여기에 타이밍을 언급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패션 업체들이 사정이 안 좋아 디자인에 투자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신진디자이너에겐 좋은 기회가 됐다는 얘기였다.

행사 참가 전 일찌감치 받은 멘토링도 도움이 컸다. ‘신진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측은 실질적 성과를 거둘 방법으로 피티 워모를 택했고, 국내외 전문가로부터 사업 컨설팅을 받았다. 이를 담당한 글로벌 비즈니스 어드바이저 카를로 디 세그리아(Cario Di Cegria)는 세 브랜드에 대한 각기 다른 전략을 짰다. 인스탄톨로지의 경우 워낙 튀는 스타일이라 패셔너블한 아이템을 찾던 바이어들에게 확실한 대안이 되지만 가격 경쟁력은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웨스티지는 지금의 클래식한 제작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을 브랜드 상징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바스통에 대해서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시장을 먼저 공략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성급한 성과를 기대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이탈리아나 유럽의 유통은 지역마다 100~150개의 상점들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가족 경영이 대부분이라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시간도 걸린다. 이들의 성패는 최소 2년 뒤에 지켜보라.”

권문수·한현민 등 신진들 눈에 띄네

이번 피티 워모에서는 세 팀을 제외 하고도 4개의 한국 브랜드들이 더 있었다. 코오롱의 ‘시리즈’는 2012년 1월 이후 꾸준히 이름을 알리고 있고, 한태민 디자이너 역시 지난해 1월부터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East harbour surplus)’라는 브랜드로 피티 워모에 참가하고 있다. 한씨의 경우 국내에서 ‘샌프란시스코마켓’이라는 남성복 편집매장을 운영하는 CEO 겸 디자이너로, PB 브랜드였던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를 해외 시장에 내세웠다. 한국 브랜드이지만 옷 전체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인 것이 특징. 이탈리아 톱3 편집매장에 모두 입점돼 순항 중이다.

‘MUNSOO KWON’의 권문수(사진) 디자이너와 ‘M<00DC>NN’의 한현민 디자이너는 처음 피티 워모에 참가하며 이탈리아 현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권씨의 경우 이탈리아 남성 패션지 ‘루오모 보그(L’UOMO VOGUE)와 ‘지큐(GQ)’가 함께 선정한 신진 브랜드 발굴 프로그램 ‘The Lastest Fashion Buzz’에 뽑혀 다른 10개국 디자이너들과 함께 자리를 빛냈다. ‘M<00DC>NN’의 한현민 디자이너는 2013년 브랜드를 론칭한 신진 중의 신진. 하지만 이탈리아 홍보 에이전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피티 워모에 입성했다.

피렌체=글 이도은 기자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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