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처구니없는 경제부총리의 '국민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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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22일 신용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고 한 발언은 경제 수장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국민=어리석은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악의 타이밍에 나온 최악의 발언이다.

 우선 국민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개인정보가 만천하에 까발려진다는 데 대한 국민 불안이 극도로 커질 때였다. 정보를 유출한 금융회사는 물론 감독 소홀과 뒷북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에 대한 문책론도 들끓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니 “정부 문책론을 피해가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사는 것 아닌가.

 백번 양보해 의도는 순수했다고 치자. 현 부총리 해명대로 “수습이 우선임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이 어떤 날인가. 국민 분노와 비난이 빗발치자 금융 당국이 부랴부랴 대책을 앞당겨 발표한 날이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회사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며 ‘징벌적 배상금’과 최고경영자 해임을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래 놓고 ‘문책은 바보들이 하는 짓’이라고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나. 그러니 당장 여당 최고위원들부터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자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발상”이라고 꾸짖는 것 아닌가.

 현 부총리가 “정보 제공에 다 동의해줬지 않느냐”며 금융 소비자를 탓한 것은 더 문제다. 말은 맞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게 누군가. 신용카드사에서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최대 50여 가지에 달하는 민감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선택적 동의조차도 불가능한 게 현재의 시스템이고, 이를 방치한 게 정부다. 그래서 이날 대책에도 최소한의 고객정보만 수집·보관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 아닌가. 현 부총리가 이런 현실을 알고도 그런 말을 했다면 후안무치요, 모르고 했다면 자격미달인 셈이다.

 부총리의 한마디는 무게가 다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시장의 파장을 따져 신중히 해야 한다. 위만 바라보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돌출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발언은 실언의 수준을 넘어섰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에서도 “전 부처가 달려들어 수습하고 있는데 부총리 한마디로 다 까먹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겠나. 그런데도 현 부총리는 해명에만 급급하니 안타깝다.

 현 부총리는 지금이라도 실언을 사과하고 개인정보 보안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어제까지 신용카드를 해지·재발급 받은 사람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국민 불안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뿐 아니라 고객정보를 다루는 기업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보안대책도 이번 기회에 함께 마련돼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9건의 개인정보 입법을 독려하고 ‘개인정보 거래 암시장’을 뿌리 뽑을 방안도 필요하다. 부총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야 할 일은 이런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