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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간은 말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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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몸에서 간처럼 과묵한 장기가 있을까.
위도, 심장도, 폐도 조금만 무리가 가면 말썽을 일으킨다. 그러나 간은 아무리 시달리고 고달파도 좀체로 불평을 털어놓지 않는다. 꾸준히 자기의 맡은바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간의 업무가운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해로운지 아니면 이로운지를 검열하는 기능이다.
영양분인 경우는 가공처리를 한 후「에너지」원으로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배급해 준다. 그러므로 간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의 관리자인 동시에 배급자인 셈이다.
만약 섭취한 음식물이 해로우면 해독기능을 발휘, 우리 몸을 재액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간은 또 섭취된 지방을 잘게 빻아서 소화흡수 시키고 대사에 필요한 효소를 만드는가 하면「호르몬」의 작용 및「콜레스테롤」량을 적절히 조절하고「비타민」A·D·E를 저장, 「스태미나」를 증진시켜 주기도 한다.
이처럼 과중한 임무를 떠맡고 있음에도 간은 좀체로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주인에게 봉사한다. 어지간히 상처를 입어도 질병감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전체의 7할을 떼 내도 간은 다시 자라나는 재생능력을 발휘해서 원 상태로 복구시킨다.
그러나 평소 과묵한 사람이 일단 성을 내면 무섭듯 침묵을 지키고 참던 간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힌다.
일반적으로 간장병이 치료가 어려운 치명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다.
그런데도 책임감이 강하고 과묵한 간을 현대인은 얼마나 못살게 굴고 비위를 거슬리고 있는가.
조금만 피로해도「드링크」류를 마시는가 하면「스태미나」를 보강한답시고 정력강장제니, 「호르몬」제니, 보약이니 해서간을 괴롭히고 있다.
무서운 간경변으로 사망한 사람가운데 뜻밖에도 정력강장제나 보약을 대량 복용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일본 후생성의 경고나, 보약으로 먹는 한약이 간염 및 간경변을 일으키는 예가 흔하다는 국내의학자들의「리포트」를 접어 두고서라도 점잔하기 이를 데 없는 간을 그토록 괴롭히고 혹사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김영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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