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새 학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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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봄이 돌아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미국 바람이 불어 한동안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곤 했다. 그러나 봄에 새 학년을 맞는 것이 우리네 형편에는 적합한 것 같다.
겨울 방학 동안 텅텅 비었던 「캠퍼스」에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새 봄과 함께 싱싱한 생명들이 부푼 가슴들을 안고 학교 뜰과 교실을 오가고 있다.
예전에 중학교 2학년 영어책에 Winter is over, spring has come이란 구절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얼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고, 메마르고 삭막했던 들과 산에 푸른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식탁에는 이미 달래가 올랐다. 그 줄기 끝의 푸른 빛깔은 시들었던 우리들의 생명에 새 힘을 줄 것만 같다.
이렇게 축복된 자연의 새 계절에 우리는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았다. 새로운 꿈도 꾸어 보고, 새로운 포부도 안아보고, 새로운 계획도 세워본다. 학교마다 기구가 새로이 꾸며지고, 방 배치도 바뀌고, 모든 것이 새로와 지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마음도 새로워졌을까? 더 아름다와지고 더 깨끗해지고 더 선해지고 더 지혜로와 졌을까? 형식과 겉모양과 차림새만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도 새로와지고 선해지고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참으로 유익하게 우리의 생활에 이용되고 우리가 탐구하는 진리가 사회에서 펴지면 얼마나 좋으랴.
새 학년 새 학기에는 학원이 평온하여, 모든 학생이 지식을 닦고 진리를 탐구하는데 몰두하여, 그 닦고 탐구한 것이 우리 나라를 빛내고 인류의 복지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위정 당국은 겨울 동안 대학생들과 많은 접촉을 벌여 「데모」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작업을 한 줄 안다. 우리는 누구나 학원이 평온하기를 빈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그리고 강구한 해결책이고 근본적인 것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진리의 안목에서 사회를 볼 때, 모순이 많고 부정이 심각하여, 거의 해마다 학생들이 「데모」를 벌이곤 했다. 「데모」를 함으로써 학생들은 많은 공부 시간을 빼앗겼다. 「데모」 해봤자 소용도 없는 것을 공연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철이 없고 혈기가 넘쳐 「데모」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지식과 진리 때문에 「데모」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너무 순진한 건가? 그러나 양심이 맑아, 그 거울에 부정 부패가 너무 잘 비쳐서 견딜 수 없어 「캠퍼스」 밖으로 뛰쳐나와 정의와 진리를 외쳐 보고 싶은 충동에 지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원이 평온하여 모든 학생이 학업에만 열중하는 것을 누구나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그리고 「데모」가 없기 위하여는 사회 정책이 정의를 실현하여 우리 사회에 모순과 죄악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회 안의 커다란 모순이 제거되어 이번 새 학년 새 학기에는 모든 학생이 학업에만 열중하여 학문과 예술에 있어 빛나는 업적들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기를 우리 모두 기구 하자. 최명관 <숭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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