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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강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프랑스」에서는 1차 대전 때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죽는 순간 뭐라고 외치고 죽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거의 모든 병사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며 죽었다는 게 밝혀졌었다.
이런 「프랑스」인에겐 30년 동안이나 강복 명령을 기다리며 「정글」속에서 숨어산 「오노다」 소위와 같은 일본인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불가사의로만 보일게 틀림없다.
「오노다」 소위가 겪은 것과 같은 극한상황에서 30년씩이나 생명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정녕 경탄할 만한 일이다.
다행히 열대의 「정글」 속에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과실도 많고 작은 날짐승들도 흔하다. 그러나 사람이란 허기만 면한다고 살아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추위나 더위 또는 허기보다도 고독이라고 한다.
지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또 하나의 일본군 패잔병 소정장일의 경우, 다행히도 그가 숨어있던 근처에는 마을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오노다」의 경우도 그가 외톨이 된 것은 72년 10월 이후. 그 이전까지는 곁에 전우(?)들이 있었다. 그러니 고독의 고통만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역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다. 어느 외지는 일본인을 다시 보게되었다고 까지 했다. 아마 놀라움보다도 두려움이 앞선다는 말일 것이다.
「오노다」를 맞은 일본의 여론은 지난번 황정의 환국 때나 마찬가지로 그저 장하다고만 보는 모양이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까지도 「오노다」의 용감성과 인내력을 찬양』하고 있다.
왜 지금까지 투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오노다」는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이런데서 군인정신의 극치를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을 때에 어머니를 부르는 것은 비단 「프랑스」 병정들만은 아니다. 일본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황정 역시 순전히 생존의 본능에 좇아 근 30년을 숨어살았다. 그런 황정도 생환되어온 다음에 제일 먼저 천황에게 절을 했다.
이번「오노다」의 경우에는 더욱 뚜렷이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인물의 기형아를 보는 것만 같다.
그의 소지품에는 「라디오」도 있었다한다. 일본의 패전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령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얘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딱하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오노다」는 마냥 숨어있을 작정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정말로 그를 지금까지 숨어살게 만들고, 무엇이 그를 지금까지 지탱해주었는지를 깊이 캐내어 볼만도 하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그것이 정녕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부르며 죽어도 좋은 상황과 어머니를 부르고 죽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든 상황과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를 이제 와서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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