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원입법 '과잉 대못' 쏟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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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제민주화 입법 바람이 거세게 불던 지난해 5월 국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하도급자의 기술을 빼앗았을 때 최대 3배의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규제로, 개정안을 통해 적용 범위가 부당한 발주 취소·반품·대금 감액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일부 국회의원이 이 정도로는 갑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면서 ‘10배 징벌폭탄’을 주장하고 나섰다.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과잉규제라며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제동이 걸렸지만 10배 배상 법안은 일부 의원이 제출한 ‘의원입법’을 통해 정식 법안으로 상정될 뻔했다.

 이같이 ‘아니면 말고’ 식의 불량 법안들이 국회에서는 하루에도 예닐곱 개씩 쏟아진다. 지난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는 1만2220건이 발의된 뒤 채택되지 않거나 회기가 끝나 자동폐기된 법안이 1만49건에 달한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증가 억제에 나서도 의원입법이 쏟아지면서 정부 공식 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 예외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도 ‘규제 전봇대 뽑기’에 나섰지만 정부 공식 규제는 2009년 1만2887개에서 2012년 1만4885개로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 혁파를 외친 지난해에도 규제가 늘어나 지난해 말 공식 규제는 1만5067개를 기록했다. 정부입법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지만 의원입법이 늘어난 탓이다.

 의원입법은 견제를 받지 않는다. 대표 발의한 의원을 포함해 의원 10명만 모이면 법안 제출이 가능하다. 문제는 정부입법과 달리 규제 영향 분석이 거의 검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입법은 모든 절차를 거치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정부부처 간 경쟁이나 갈등이 있으면 통과가 더 어려워진다.

공무원들이 ‘규제심사 우회수단’으로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이유다. 이 중에는 정부가 국회의원을 앞세워 만드는 청부(請負)입법도 적지 않다. 이 여파로 14대 국회에서 119건이었던 의원입법은 18대에서 1663건으로 14배가량 늘어났다. 19대 국회에서도 이미 745건을 기록해 167건인 정부입법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뒤늦게 일부 의원이 자정 노력에 나섰지만 진척이 없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의원발의 법률안은 규제사전검토서를 첨부하고, 법률안의 규제영향 평가를 거치게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인 국회운영위원회는 아직까지 이 법안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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