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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의 촉진을 위한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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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법원이 마련한 민사소송의 촉진방안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원심재판장에게 항소장 심사권을 주고 원심법원에는 형식적 항소각하권을 부여한다는 것과 3백만원 이하의 경미한 사건에 대하여서는 상고를 제한하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구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법원에는 사건이 폭주하기 때문에 대법원판사들의 부담이 늘어나 법제도 개선은 시급한 것이다. 작년 9개월간에 1인당 취급건수만도 4백60건에 달해 월 50건, 즉 1일 2건 이상이라는 엄청난 양을 재판하고 있다. 이것은 외국 최고심판사의 몇 배 내지는 몇l0배에 달하는 것으로 범상한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감내할 수 없는 부담 양이라고 하겠다.
대법원의 사법제도개선심의위원회는 재작년에 이미 민사소송법개정안을 마련하였었는데 당시에도 민사소송의 촉진을 위하여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을 채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법률심인 대법원에 연6천여건의 사건이 접수된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론 사실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통일되어 있거나 법률이나 명령·규칙이 명확한 경우에는 법률심에의 상고는 많지 않을 것인데도 판결이 통일되어 있지 못하고 법률적용이 일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상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사실심인 항소심을 보다 강화하여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항소부에서의 적절한 판결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상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특히 항소에 원심재판장의 심사권을 부여하려는 것은 항소심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기에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법정사기죄나 법정모욕죄 등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대법원은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이 규정을 신설할 것이라고 하는 바 형법에 규정하는 것이 법체제상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또 소가 3백만원 이하의 상고를 제한하려고 하는 취지도 그 뜻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법률심에서 소가를 기준으로 상고를 제한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한다. 외국에서는 변호사의 대리 없는 상고는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민사상고의 경우에는 본인소송을 금지하고 대리인소송을 원칙으로 하도록 함이 옳다. 현재도 법률구조협회가 조직되어 있고 대법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민사소송에도 국선변호인을 붙이도록 할 것이라 하므로 대리인소송만 하도록 하는 것이 법률심의 권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고등법원에서는 대리인소송이 40%나 되는데 대법원에서는 대리인소송이 2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대리인소송을 강제하는 경우 소송비용 때문에도 3백만원 이하의 소송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법원은 상고제한 못지 않게 인원수를 늘리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우선 대법원판사를 헌법의 상한까지 늘려서 임명하는 것이 절실하며, 재판연구원드로 하여금 판결례 통일작업을 시켜 판례를 조속히 정비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에 재판연구원을 많이 두는 것은 사실심이 소홀해질 수 있는 폐단이 있으나 산적해 있는 상고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다.
일례로 서독의 경우 대법원 판사급만도 1백명이 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대법원판사의 수를 늘려 영구히 남을 명판결이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송의 지연은 정의의 지연이기 때문에 사법부는 신속하고도 공정한 재판이 행해지도록 가일층 노력해야할 것이다.
사법은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본권의 제약보다는 그 신장에 보다 적극적인 배려를 해야할 것이요, 특히 가사심판을 공개하는 것은 회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재판의 공개는 원·피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강제되고 있는 것이요, 그들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방향으로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점 대법원의 재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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