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깊어가는 '두동강난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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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양분되고 있다. 전쟁이 임박하면서 적과 동지가 분명해지고 양 진영 간 골도 깊어지고 있다.

전쟁을 주장하는 참전연합 세력의 중심은 16일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 모인 미국.영국.스페인 3국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동맹의 중심은 아조레스 정상회담을 겨냥해 하루 앞선 지난 15일 공동성명을 채택한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이다.

이들은 외무장관들 간 전화통화를 통해 만들어 낸 성명에서 "우리는 현 상황에서 그 무엇도 사찰과정을 중단하고 무력사용에 의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고 선언했다. 성명은 "중국의 지지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전쟁을 둘러싸고 선명하게 대조되는 입장으로 마주 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이끌어온 중심국가들이다.

이들이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편가르기에 들어간 셈이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연합국이었고, 종전 후 승전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는 모두 전후 국제사회의 안정을 공동 책임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됐다.

그러나 얼마 후 동서가 대립하는 냉전의 시대가 시작됐고,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은 자유진영을 형성해 공산혁명을 거친 사회주의 대국 러시아(소련).중국과 맞섰다.

1990년을 전후한 냉전 종식 이후 다소 유동적이던 국제질서가 이번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영국 대 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의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전쟁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을 해온 국제질서가 이번에도 이라크전을 앞두고 새로운 판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는 전통적인 혈맹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도 비슷한 영국, 그리고 9.11테러 이후 바스크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온 스페인이 미국 쪽에 선 것은 당연하다.

나머지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경우 반전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 반전 쪽에 섰다. 그중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가 앞장서 반전동맹을 주도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끌어온 독일, 중동에 큰 이해가 걸린 또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힘을 모았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했다.

이라크 전쟁은 참전국의 숫자에 상관없이 21세기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국제전이 됐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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